노는 게 남는 거다

도서관 다녀 오는 길, 놀고 가자는 나우의 말에 비탈진 잔디밭에 덜퍼덕 주저 앉았다. 나우는 언이를 데리고 언덕 아래 놀이터로 내려가고 나는 ‘무슨 무슨 역사’ 책을 읽고 기엽이는 ‘우주의 팽창’을 봤다. 얼마 후 그동네 토박이 아이들이 골판지를 가져다가 잔디밭에서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그걸 보더니 나우도 따라 타기 시작했고, 기엽이도 따라 했다. 막내는 덩달아 소리를 질러 댔다.

날이 저물고 기온이 떨어지길래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오는 동안 녀석들은 아주 신이 났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재미있는 건 처음이야.” “우리 집에 가서 썰매 만들자.” “그래, 좋아.” “엔진을 달면 어떨까?” “안전 벨트도 매야지, 누나.” “아빠, 우리 내일 또 여기 와서 놀아도 돼요?” “집에 가면 엄마 한테 할 말이 정말 많겠다, 그치?”

그래, 놀아라, 놀아. 노는 게 남는 거다.

어록

우) 잘 가거라, 슬픔의 운동회여!

따위) 왜 슬퍼, 져서?

우) 네에, 그렇지요.

따위) ……

우) 아휴, 번데기 하나라도 먹었으면!

고장난 시계나 사전 팔아요.

영어 사전, 독어 사전, 불어 사전, 일어 사전,
현재 이렇게 4권의 사전이 책상 위에 올라 있다.

그리스어 사전, 이태리어 사전, 러시아어 사전, 스페인어 사전,
이렇게 4권의 사전도 있었으면 좋겠다.

Lake Michigan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어디선가 만난 남녀가 다음 장면에서 ─ 1초도 안 지나서 ─ 강가에 서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오늘 내가 그랬다. 8년 만에 찾아온 누군가를 어느 지하철역 5번 출구에서 픽업하여 강가로 차를 몰았다. 인적 드문 강가에 나란히 앉아, 어두워 가는 강물에 돌멩이를 몇 개 던져 넣었다. 얼마 후 그는 떠났고, 늘 그렇듯 다시 만날 기약은 없다.

바닷가 이야기

─ 이기언 作


옛날 옛날 착한 전기 뱀장어가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전기 뱀장어는 전기 가오리를 만났어요.


또 가다가 전기 메기를 만났어요.


그리고 전기 가오리는 떠났고
전기 뱀장어와 전기 메기는 서로 다른 곳을 찾아 갔어요.
안녕, 난 갈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