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다녀 오는 길, 놀고 가자는 나우의 말에 비탈진 잔디밭에 덜퍼덕 주저 앉았다. 나우는 언이를 데리고 언덕 아래 놀이터로 내려가고 나는 ‘무슨 무슨 역사’ 책을 읽고 기엽이는 ‘우주의 팽창’을 봤다. 얼마 후 그동네 토박이 아이들이 골판지를 가져다가 잔디밭에서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그걸 보더니 나우도 따라 타기 시작했고, 기엽이도 따라 했다. 막내는 덩달아 소리를 질러 댔다.
날이 저물고 기온이 떨어지길래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오는 동안 녀석들은 아주 신이 났다.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재미있는 건 처음이야.” “우리 집에 가서 썰매 만들자.” “그래, 좋아.” “엔진을 달면 어떨까?” “안전 벨트도 매야지, 누나.” “아빠, 우리 내일 또 여기 와서 놀아도 돼요?” “집에 가면 엄마 한테 할 말이 정말 많겠다, 그치?”
그래, 놀아라, 놀아. 노는 게 남는 거다.
노는게 남는거면
난 정말 남은게 많아야 하는데
별루 안 남은 거 같다
그 말이 잘못됐나? 내가 잘 못 논 건가?
방금 ‘왕의 남자’를 처음 보았는데
거기서 “한 판 신나게 놀아보자꾸나”라는 대사가 들리더군.
논다는 게 그런 뜻이었으니
우리네 노는 거는 노는 것도 아니었어라.
눈 멀어
“나 여기 있지. 너 거기 있나?”하며
제 짝패를 부르는 것,
그런 게 노는 거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