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빨간 벽돌 되세요.

다 저녁 때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교체를 권유하는 전화가 왔다.

저쪽: 안녕하세요? OO통신입니다. 좋은 하루가 되세요.
이쪽: 아, 오늘 하루 다 갔는데 좋은 하루는 무슨 좋은 하루가 되라고 그래욧!
저쪽: (순간 당황하더니) 예, 그럼 오늘 하루도 좋은 웃음으로 마무리 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이쪽: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저쪽: 예, 고객님 인터넷 어디 꺼 쓰세요?
이쪽: 일 없어요. 그쪽은 좋은 빨간 벽돌 되세요.
저쪽: 예?
이쪽: 전화 끊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라는 말이 말이 되면 좋은 빨간 벽돌 되라는 말이 말이 아니될 이유가 없다.

다른 사례들:
“그럼 오늘 하루도 저희 OO마트와 함께 즐거운 쇼핑 되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점심 되세요.”

상처

“내[R]가 프랑스에 가기 전에,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에 너[J]는 노상 상처가 어떠느니 하고 말하고는 질금질금 울곤 했었지. 그래서 난 수첩을 꺼내어 하얀 페이지를 펼쳐놓고 크게 <상처>라고 쓰고 난 뒤 무엇이 상처냐고 물었지. 그러자 너는 눈물을 거두고 맹한 눈으로 내가 쓴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지. 그리고 나는 설명했지. 인간의 심리나 감정이 어떤 외부적 자극에 의해 되어지는 결과를 너는 무조건 <상처>라는 단어로 일축해 버리는 데 쾌감을 느낀다, 이런 용어들로 세상의 모든 미세한 것들을 단순화한다는 것은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심히 옳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제 다시는 이런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는 등의 말을 하며 수첩 위에 씌어진 글자 위에 힘차게 엑스(X)표를 했지. 기억이 나느냐?”

─ 하일지, <<경마장 가는 길>> 중에서

1990년, 한라산에 오를 때였다. 길은 가파르고, 바닥은 미끄럽고, 바람은 세차고, 구름 속이라 비가 내렸다. 나는 선두 그룹에 있었고 마음만 먹었다면 일행 중 제일 먼저 정상을 밟을 수도 있었다.

정상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을 때 지금까지 잘 따라오던 B가 뒤에 쳐졌다. 나는 1등을 포기하고 B를 에스코트 해주었다. 이런 얘기하는 건 우습지만 B는 내게 관심을 보이던 A의 절친한 친구였다. B에게 잘 해주는 내 기사도적인 모습(민망해라)을, A에게 보여줌으로써 점수를 좀 따려고 했었던 거다. (저 오빠 멋져!)

험한 길을 힘들게 오르며 B에게 딴에는 멋진 말을 해준답시고─어서 주워들은─니체가 “위험하게 살아라 Live Dangerously”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B의 반응은 예상외로 씨니컬했다. 나는 마음이 상했으나 그렇다고 삐져서 B를 남겨 놓고 가버릴 수는 없었다. 나의 천사 A는 산도적같은 과동기 놈과 함께 저 앞에 가고 있었다. (아쉬워라.)

그때 나의 확 잡친 기분을 나는 지금까지도 미세한 <상처>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 나 쪼잔하다.) 이것을 <상처>라는 말로 “단순화”하지 않으면 무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튼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B는 여행지에서 잠시나마 제 친구를 앗아간 나를 적절하게 응징한 것일 수도 있겠다.

누님 할머니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자주하는 거, 이게 일종의 망상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과대망상이요, 내 코가 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피해망상이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누님 할머니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몇 달 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동안은 강습 받는 게 영 내키질 않아서 동영상을 찾아 연구해 가면서 혼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업계에서는 나 홀로 하는 수영을 ‘자유수영’이라고 부른다. 자유수영은 그럭저럭 할만했다. 석 달 열흘을 허우적대다가 자유형으로 처음 25미터를 갔을 때는 천하를 얻은 것 같았거니와, 한두 달 더 맹연습을 하니 배영도 됐고, 평영도 됐고, 목불인견 접영도 됐다. 인생이 즐거운지는 잘 모르겠으나 수영은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쪽에서 저쪽까지 헤엄쳐 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어떤 누님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수영 잘 하시네요.”

옛말로 하면 ‘오호라’요, 요즘 말로 하면 ‘허걱’일세. 그러니까 이게 바로 저 유명한, 그야말로 말로만 듣던,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다는 천재일우의 ‘작업’이로구나. 수영을 하니 피가 잘 돌고, 피가 잘 도니 두뇌가 활성화 되고, 두뇌가 활성화 되니 세 살 때 배운 어려운 문자도 청천벽력처럼 떠오르는구나. 아니다. 내가 지금 이런 자의식 과잉에 빠질 때가 아니다. 이럴 때 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그 누님 할머니의 다음 대사는 내 예상 시나리오와는 영 달랐다.
“그런데 강습은 안 받으시나 봐요?”

그 말을 계기로 마침내 나를 향한 수영장 누님 할머니들의 ‘집단 수영 강습’이 시작되었다. 어제는 이 누님 할머니가 숨쉴 때 고개를 높이 들지 말라 하고, 오늘은 저 누님 할머니가 발차기 할 때 무릎을 꺾지 말라 하고, 내일은 그 누님 할머니가 손과 발의 박자가 안 맞는다고 했다. 누님 할머니들 말에 의하면 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귀, 코, 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으니 지금까지 내가 한 수영은 수영이 아니었다. 그동안 누님 할머니들은 내가 혼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애처롭게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평영을 하며 숨을 쉬느라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 때마다 발, 발, 발 하는 소리가 들렸다. 거, 누군지 수영장에서 너무 떠드는군. 아, 그랬는데 저쪽 끝에 가서 보니, 그 소리는 글쎄 어떤 누님 할머니가 옆 레인에서 나를 따라오며 물 밖으로 자꾸 발이 나온다고 내게 알려주는 소리였다. 열정도 그런 열정이 없었고, 극성도 그런 극성이 없었다. 남은 숨차 죽겠는데 까짓 발이 물속에 있던지 물밖에 있던지 그게 대체 나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수영장 누님 할머니들이 조를 짜서 교대로 나를 감시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망상에 빠졌다.

누님 할머니들의 악령이 출몰하는 시간대를 피해 가도 다 소용없었다. 그때마다 어디선가 늘, 어떤, 모르는, 새로운 누님 할머니가 나타나 내 한 없이 절망에 가까운 수영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어떤 누님 할머니는 직접 내 발목을 붙잡고 돌려가며 발차기를 가르쳐 주었고, 또 어떤 누님 할머니는 말로는 외간 남정네 앞에서 평영 시범 보이는 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몸으로는, 다소 민망한 자세로 보란듯이 시범을 보여주었고, 아들 둘을 수영 선수로 키우셨다는 어느 누님 할머니는 몇 마디 말로써 내 자세의 문제점을 간단히 교정해 주기도 했다. 국가대표 코치가 따로 없었다.

얼마 후 나는 누님 할머니들의 뜨거운 성원과 격려와 관심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자유수영에서 자유를 과감하게 떼어버리고 강습반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러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런데 공포 영화가 막판에 늘 불길한 뭔가를 암시하며 끝나듯 불과 며칠 전에도 나는 처음 보는 웬 모르는 누님 할머니가 “그 동안 수영 많이 늘었네”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누님 할머니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
파일 정리 하다 보니 이런 것도 있길래 올린다.

오랜 만의 80bytes

나: 경포대요 파도 소리가 좋소 잘 자오

아내: 심히 부럽소 나도 파도 소리 좋아한다오 낼 봅시다

#993

오늘 아침 언이가 있는 대로 늑장을 부리다가 가방 메고, 신발 신고, 현관문 열고 집을 나서면서 기껏 한다는 인사를 말씀드리죠. “유치원에 다녀오겠습니다만…” 말본새하고는. 대관절 이게 무슨 뜻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