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오늘 궁금한 게 있어.

김용규의 지식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보면 알도가 11살 때부터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대장정을 시작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어린 시절 내게 백과사전이 있었다면 나도 알도처럼 백과사전을 끼고 살며 드넓은 지식의 세계로 빠져들었을까.

“아빠, 나 오늘 궁금한 게 있어.” 누나 형아가 이런 저런 일로 밖으로 나가고 나면 혼자 남은 막내가 내게 와 말한다. 오호, 구래 구래, 내 새끼. 크게 될 놈이로고. 그래 무엇이 궁금하냐? 그러나 녀석은 가령 상대성이론이라든가 은유라든가 혁명이라든가 하는 이런 거창하고 고상하고 근사한 건 정녕 궁금해하는 법이 법다. 고작 시계, 곤충, 공룡 따위나 궁금해 할 뿐이다. 그나마 궁금한 게 있다는 것도 실은 사기고 속셈은 심심한데 저랑 놀자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이 궁금하다는 표제어을 백과사전에서 찾아 녀석에게 디민다. 어찌어찌 하여 언문은 간신히 깨쳤지만 이제 국산 나이로 일곱살 먹는 놈이 읽기는 무얼 읽겠는가. 녀석은 그림이나 몇 개 보다가 금방 시들해 지고 마는 것이다.

시골에서 놀다 1

시골에 사는 지인이 있어 내 아이 셋에다가 남의 아이 둘을 더 지참하고 며칠 여행을 다녀왔다.

도착 후 본 따위人─당선자도 人이라는데 나라고 人 못할 거 뭐있냐─의 제일성은 이랬다.

주의사항을 전달하겠다. 첫째,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하지 말 것. 둘째, 싸우지 말 것.

아이들은 과연 공부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무에 그네나 매달아줄 요량으로 동네 산악용품점에서 자일을 10미터 사갔는데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라펠rappel까지 하게 되었다.

요즘은 都大體 ─ 이걸 굳이 한자로 표기하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이 말을 한자로 이렇게 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뭘 쓸 수가 없다. 그러니 그만 쓰겠다.

고양이의 시간

1.
고양이가 집에 왔을 때 나는 카레닌을 생각했다. 카레닌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개였다. “카레닌은 뒷다리 하나를 절름 거렸다. 토마스는 개에게로 허리를 굽혀 저는 다리를 만져보았다. 그는 허벅지에서 작은 혹 하나를 발견했다. 다음날 그는 개를 트럭의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차를 몰아 수의사가 사는 이웃마을로 갔다. 일주일 뒤 그는 수의사에게 들렀다. 그는 카레닌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p343-344)

카레닌의 말로을 ‘읽는’ 일은 쓸쓸했다.

2.
며칠 지켜보니 알겠다. 고양이는 고양이로 태어나 고양이로 살다가 고양이로 죽는다. 당연하다. 강아지로 태어나 고양이로 살다가 두더지로 죽는 고양이는 없다. 하기는 미운 오리로 태어나 백조가 된 사례가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건 오래 전 먼 나라 얘기다.

3.
<<섬>>에서 <고양이 물루>를 다시 읽었다. 물루의 말로도 카레닌과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는 너무나 겁에 질려 있어서 어둠 속에 갇힌 채 몸을 움직일 생각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수의사는 자루를 창고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 동안 나는 대기실에서 벽시계, 옷솔, 우산, 거실의 문 위에 달린 사슴의 뿔 따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 되었습니다’하는 소리를 들었다. 세르벨 씨는 고양이를 가지고 와서 ‘제가 뒤처리를 해드릴까요?” 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거절했다. …… 어머니는 매우 울적한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시체를 꺼냈다. 두 눈은 흐릿하고 털을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두 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물루가 놀라울 정도로 고분고분 내게 몸을 맡기고 있다느 생각이 들었다.”(p71-72)

4.
“너는 고양이 똥 치우는 일이 재밌니?” 내가 물었다.
“응, 너무 재밌어.” 딸아이가 대답했다.

5.
고양이는 고양이의 시간을 산다.

6.
고양이의 시간과 내 시간이 오버랩 된다. 너나 나나 그저 한 목숨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