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Grenier, 함유선 옮김,<<섬 Les Iles>>, 청.하, 1988(1쇄) 1997(17쇄)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 <<섬 Les Iles>>, 민음사, 1997(1쇄) 2003(15쇄)
섬, 언제 들어도 참말로 거시기한 말이다. 이 말이 주는 고립과 격리의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매력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곤혹스럽다. 내가 섬인 건 참을 수도 있고 때로는 호젓한 게 즐겁기까지 한데, 다른 사람이 자기 만의 섬으로 기어들어가서는 두문불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이딴 소리나 하고 자빠져 있으면 그 자를 당장 그 섬에서 끄집어내어 사람들 사이에 쳐박아두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내가 섬에 들어가는 건 자발적인 유배니 내가 나올 때까지 날 꺼낼 생각 같은 건 아예 하덜덜덜 말라. 그러나 니가 섬에 들어가겠다는 건 현실도피이니, 더구나 이 부박한 삶이 피한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니 까불지 말고 그냥 여기서 사람들과 살부비며 부대끼며 아둥바둥 살아라. 그러다 보면 좋은 날도 오겠지.” 뭐, 내보기에 이런 식의 도둑놈 심보가 다들 조금씩은 있는 거 같다. 당신이라도 없으면 다행이고.
쳇,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그 섬에 가고 싶다고? 내 살아보니 사람들 사이에 섬 같은 건 없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건 바다다. 불통과 욕망과 절망의 바다가 사람 환장하게 출렁거릴 뿐.
섬. 나에게 장 그르니에의 <<섬>>이 두 권있다. 선물받은 거 아니다. 두 권 다 내 발로 서점까지 걸어가 내 손으로 집어 들고 내 돈 내고 산 내 책이다. 하나 달라고? 택도 없는 소리!
첫 번째 ‘섬’은 88년 8월 20일에 1쇄를 찍고 97년 8월 11일에 17쇄를 찍은, 함유선이 옮긴 청.하 출판사 版 ‘섬’이다. 이 책의 책갈피에서 뒷면에 ‘피로연 장소, 신혼여행지’ 따위의 글자가 적혀있는 파란색 ‘경복궁 출장피로연 메뉴 전단지’가 나왔으니 결혼 즈음에 들고 다녔었나 보다. 솔직히 이거 읽다가 말았다. 지루해서. 나는 잘 안읽히는 이유를 번역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렸다.
두 번째 ‘섬’은 97년 8월 30일 1쇄를 찍고 2003년 11월 20일에 15쇄를 찍은, 김화영이 옮긴 민음사 版 ‘섬’이다. 번역자가 다르니 읽힐까 싶어서였고, 때마침 섬으로 휴가도 가게 된 참이라 가서 읽으리라 했다. 늘 그렇듯 여행가서는 들춰보지도 못했다. 아무려나 두번째 섬도 잘 안읽히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김화영의 번역을 높게 사는 듯 하지만 두 권을 놓고 비교해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내 보기에는 함유선의 번역이 좀 더 시적인 반면에 문장이 호흡이 좀 거칠고, 김화영의 것은 문장이 부드러운 반면 맛은 좀 덜하다고나 할까. 어느 게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불어로 된 원서를 읽을 능력이 없으니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까뮈는 이 책에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김화영 역)”고 했으나 ─ 같은 문장을 함유선은 이렇게 옮겼다.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열어 보게 되는 저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을 너무나도 열렬히 부러워한다.” ─ 난 아무래도 까뮈가 부러워할 만한 독자는 못 될 모양이다. 여전히 하품난다. 좀 더 늙어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