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와 고양이

새벽 두 시, 어둠 속에서 고양이가 밥을 먹는다. 딱딱한 사료가 접시와 맞부딪는 사기성砂器性 소리가 들린다.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슬프다. 녀석이 잔뜩 웅크리고 잠든 모습을 볼 때도 나는 슬프다.

연전에 몽고 가서 낙타 한 번 타보고 온 이가 내게 말했다. 낙타 타봤어? 낙타 안 타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이제 그에게 돌려줄 말이 생겼다. 고양이 키워 봤어? 고양이 안 키워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114

주인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우리의 새끼발가락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어 114에 전화를 걸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네, 저도요.

완곡어법

구름이라는 말을 넣어서 시를 지어봐.
아빠, 난 괴물이라는 말을 넣어서 지을래.
어디 해봐.

괴물아, 괴물아, 너를 구워 먹을까, 생선을 구워 먹을까.

괴물아, 괴물아, 너를 삶아 먹을까, 계란을 삶아 먹을까.

괴물아, 괴물아, 너를 죽여 버릴까, 토끼를 죽여 버릴까.

야, 마지막 말은 안 예뻐서 불합격이야.
그럼 마지막 거만 다시 해?
응.
알았어.

괴물아, 괴물아, 니가 세상을 떠나게 해줄까, 거북이가 세상을 떠나게 해줄까.

어조사

유치원에 다녀온 아들녀석, 먼저 선, 볼 견, 어조사 지, 밝을 명, 선견지명, 하고 읊더니 그게 무슨 뜻이냔다. 정말 유치원에서 인생에 필요한 모든 걸 다 가르치려나? 망조다. 나라가 대체 어떻게 되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대충 그 뜻을 풀이해 주고 가만 생각해 보니 어조사 지의 ‘어조사’가 거슬린다. 다른 놈들은 다 ‘제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 놈 혼자만 무슨 중뿔났다고 ‘제 역할’을 말하고 있다. 그래, 너 잘났다. 그렇게 꼭 텨?야 하냐! 니가 그잘난 어조사인 건 알겠는데 대관절 네놈의 뜻은 뭐냔 말이닷! 나는 애꿎은 어조사 지 자를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조사’를 어려워했다. 어조사 지 자 말고 어조사 야 자도 있고 어조사 어 자도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야! 청출어람청어람! 생긴 것도 다르고 쓰임새도 다른 데 이걸 다 ‘어조사’라고 읽어야 하다니! 음, 분하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누가 있어, 한자를 읽을 때 보통은 훈을 밝혀 읽지만 어조사는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범주가 다르다. 이걸 염두에 두기 바란다, 고 가르쳐 주었을 것인가. 혹은 들었는데 내가 흘려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으니까.

곧 어조사처럼 정체 모를 봄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