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녀온 아들녀석, 먼저 선, 볼 견, 어조사 지, 밝을 명, 선견지명, 하고 읊더니 그게 무슨 뜻이냔다. 정말 유치원에서 인생에 필요한 모든 걸 다 가르치려나? 망조다. 나라가 대체 어떻게 되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대충 그 뜻을 풀이해 주고 가만 생각해 보니 어조사 지의 ‘어조사’가 거슬린다. 다른 놈들은 다 ‘제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 놈 혼자만 무슨 중뿔났다고 ‘제 역할’을 말하고 있다. 그래, 너 잘났다. 그렇게 꼭 텨?야 하냐! 니가 그잘난 어조사인 건 알겠는데 대관절 네놈의 뜻은 뭐냔 말이닷! 나는 애꿎은 어조사 지 자를 나무라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조사’를 어려워했다. 어조사 지 자 말고 어조사 야 자도 있고 어조사 어 자도 있다. 농자천하지대본야! 청출어람청어람! 생긴 것도 다르고 쓰임새도 다른 데 이걸 다 ‘어조사’라고 읽어야 하다니! 음, 분하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누가 있어, 한자를 읽을 때 보통은 훈을 밝혀 읽지만 어조사는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범주가 다르다. 이걸 염두에 두기 바란다, 고 가르쳐 주었을 것인가. 혹은 들었는데 내가 흘려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으니까.
곧 어조사처럼 정체 모를 봄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