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디엔에이는 누구의 디엔에이인가?

뭐 배울 게 있다고 학교에 가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 엄동설한에 집에서 스타크래프트나 하지 굳이 학교에 다녀오겠다고 멀쩡하게 인사하고 나간 언이, 모닝 커피 한 잔 고독하게 마시고 있는데 조금 있다가, 그러니까 한 10분 쯤 있다가 다시 돌아 와 제 엄마를 찾는다. 안방에서 꽃단장을 하고 있던 아내, 자식 새끼 목소리에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버선 발로 뛰어나온다.

엄마, 책가방!

오호, 장하다. 뭐 배울게 있다고, 잊고 갔으면 그냥 갈 일이지 가다 말고 굳이 다시 돌아와 책가방 챙기면서 까지 학교에 가겠다는 건지 그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녀석이 다시 신종 플루가 창궐하는 국립보통학교를 향해 장도에 오르고 난 뒤, 우리 부부는 서로 저 자식이 상대방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갈 곳도 없는 엄동설한 이 아침에.

오늘의 문장

“다시 말해 ‘장미’는 주어의 자리에, ‘붉다’는 술부의 자리에 놓고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 (지음), 김석수 (옮김), <<순수이성 비판 서문>>, 책세상,2002,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