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
다음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구절이다. <앨리스는 나이 든 유모의 귀에 대고 갑자기 "유모! 내가 배고픈 하이에나이고, 유모가 뼈다귀라고 상상해 봐요."라고 소리를 질러서 유모를 기겁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내가 이 구절을 읽어주자 우리집 애들이 다양한 패러디를 제시했다. 이런 식이다. “기언아, 내가 배고픈 두더지이고, 네가 지렁이라고 상상해 보자.” “형아, 내가 사자고 형아가 얼룩말이라고 상상해 보자.”

2.
더러 영혼이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지는 않는다. 귀신이라는 말을 쓰기는 하지만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으니 내 안에 몇 개나 되는 영혼이 짱박혀 있는지 헤아려 본 적도 없다. 어떤 책을 보니 “우리 내부에 여러 개의 영혼이 있다”고 주장한 “학파”도 있었단다. 영혼이 여러 개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봐야겠다. 일단 하나는 팔아 먹고.

3.
영혼 사세요. 영혼 사세요. 카인의 몸에서 방금 적출한, 따끈따끈한 영혼 사세요. 영혼 사세요. 영혼 사세요. 피가 줄줄 흐르는,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고독한 영혼 사세요. 이슬 같은 영혼도 있구요, 쓰레기 같은 영혼도 있구요, 오염된 영혼도 있구요, 실연당한 영혼도 있구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영혼도 있습니다요. 아, 물론 ‘듣보잡’ 영혼도 구비되어 있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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