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이다. 아침 식탁에서 하얀 쌀밥 한 삽과 갓 구운 총각김치를 입에 넣고 오물우물거리며 고3대우 중1딸이 ‘다뭐시기’가 뭐냐고 묻는다. ‘다뭐시기’가 뭔지 발음이 불분명하여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때다. 꼰대정신을 발휘할 일주일에 한번 올까말까 한 기회다.
“잘 들어라. 전치사 with의 용법에 어떤 상황이 다른 일과 같이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용법이 있다. 그런 걸 부대상황의 with라고 한다. 그 옛날에 일본놈님들이 그렇게 번역해서 말이 어렵다. 밥 먹을 때 찌개를 같이 먹지. 그때 먹는 찌개를 부대찌개라고 하는 거다.”
설명이 한창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넘어가려는데, 부대찌개 소리에 아내가 나를 흘겨본다. 안다. 나도 어이 없는 거. 그래도 무서워하면 안 된다. 뻔뻔해야 한다. 그래야 웃긴다. 아무려나 아버님 말씀 알기를 지나가는 꽹과리 소리로 아는 딸은 또 하얀 쌀밥 한 삽 떠서 입에 넣고 빨간 총각김치 집에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다뭐시기’가 뭐냐고 묻는다. 참아야 한다. 훌륭한 꼰대는 참을성이 많다.
“아빠가 여태 니가 물은 말에 대답을 하고 있었는데 너는 듣지도 않고 다시 묻는구나. 다시 설명할테니 잘 들어라.”
나는 앞의 말을 반복한다.
“전치사 with는 어떤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을 표현하는 데도 쓴다. 그런 걸 부대 상황의 with라고 한다. 일테면 부대찌개는 밥 먹을 때 같이 먹는 찌개를 말하는 것이다. (아내가 또 쳐다본다.) 부대상황의 with를 설명할 때 드는 대표적인 예문이 있다. DO NOT SPEAK WITH YOUR MOUTH FULL. 그러니 입 안에 음식물 물고 말하지 말란 말이닷! 알겠느냐. 자, 네가 궁금한 게 뭔지 다시 물어보거라.”
딸은 아빠에 대한 절망감에 한숨을 푹 쉬며 입안에 있던 음식물을 삼키고는 다시 묻는다.
“‘다뭐시기’가 뭐예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 듣는데…”
“영화 써니에 나왔는데. ‘다뭐시기’ 문학소녀라고…”
그러더니 딸은 밥 먹다가 말고 자기 방으로 달려가 두 트럭 분량의 영화 전단지를 가져와서 <써니>를 찾는다고 법석이다. 아내는, 밥 먹다가 말고, 자기가 찾아준다고 나서더니 찾으라는 <써니>는 안 찾고 다른 영화 전단지를 찬찬히 구경하고 계시다. 원빈이라도 있으면 품에 품을 기세다. 원빈, 너 나랑 싸우자.
지켜보던 딸이 답답한지 자기가 찾겠다고 나선다. 아내는 <최종병기 활> 전단을 빼어들고 물러난다. 나는 딸이 그 뜻을 궁금해하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궁금해 미치겠다. 드디어 찾던 걸 찾은 딸이 내 앞에 문제의 전단에서 7공주(6공주인가?) 가운데 한 명을 가리키며 말한다.
“얘가 다굿발 문학소녀래. 다굿발이 뭐냐고?”
“다끝발? 다굿빨? 대구빨? 다구빨? 뭔지 모르겠다. 사전 찾아봐라.”
그리하여 뭐야, 자기도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하고 속으로 본 꼰대를 향하여 무한 툴툴 거렸을 딸이 다뭐시긴지 다거시긴지 다끝빨인지를 검색하러 간 사이, 혹시나 싶어 아이폰 검색창에 /다구/까지 쳤더니 /다구빨/이 추천 검색어로 뜬다. 별거 아니었다.
‘다굿발’ 80년대에 유행했던 고어이기도 하고 날라리들만 사용했던 일종의 전문용어
예문) 그 자식, 다굿발 장난 아니야
말빨, 끝빨, 조명빨, 화장빨 따위에 붙는 접미사 ‘빨’이 다구리에 붙어서 된 말인 것 같소. 그런데 80년대에 다구리라는 말도 있었소? 나는 못들어본 거 같아서 말이오. 날라리들 노는 곳에 범생이야 가지마라, 는 속담을 실천하고 살아서 그런진는 몰라도.
검색을 해도 제대로 된 뜻이 안 나와서
사춘기의 기억들을 디테일하게 되짚어본 결과,
‘다굿발’이라 함은 ‘싸움할 때 연장을 드는 것’을 이르는 것이라오
통상 주먹에 자신 없는 애들이 쓰는, 비겁한 방법이라는 뉘앙스도 내포되어 있소
예를 들자면, 이런 대화…
A)걔, 싸움 잘 하냐?
B)잘하기는…그 자식 순 다굿발이야.
‘다구리’는 전혀 다른 뜻이오.
통상 한 놈을 여럿이서 패는 걸 보고 ‘다구리’라 하오.
예문) 다구리로 덤비는 통에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묵사발이 되었다
여식에게 잘 설명해 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