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지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사, 1983(25쇄)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책을 꺼내 들었다. 거의 20년 만이다. 누렇게 빛이 바랜 종이 위에 다닥다닥 숨죽여 있던 텍스트들을, 세 아이들이 온 집안을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야단법석 속에서, 저녁내 읽었다.

그러자 무엇보다도 내 누이가 아직 꽃답던 여고생일 때 사들였던 삼중당문고가 떠올랐다. 아마도 이 책이 세로쓰기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첫 문장이다. (여담이지만 앞으로 되도록이면 내가 읽는 소설의 첫 문장 만은 애써 기억하려 한다.) 조세희의 문장은 대표적인 ‘스타카토’ 문체다.

그의 이 냉정한 문체는 난장이들의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이 철거되는 장면묘사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들이 우리의 시멘트담을 쳐부수었다.(…)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어머니는 돌아앉아 무너지는 소리만 들었다.(…)아주 쉽게 끝났다. 그들은 쇠망치를 놓고 땀을 씻었다.”

충돌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난장이에게 “『일만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빌려주었던 ‘지섭’이라는 청년이 나선 것이다. 그러다가 저 청년은 철거반원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보다 못한 난장이의 두 아들이 나서려 하는데 난장이가 두 아들의 팔을 잡아 끌어 제지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는 사람이 말하게 해라.”

“아는 사람”이라는 말, 무서운 말이다. 그가 저 아는 바를 “말하”는 것을 우리는 ‘실천’이라고 부른다.

Posted in 날림 독후감.

0 Comments

  1. 내 어깨에 ‘책임감’이라는 짐을
    올려놓은, 몇권의 책 중 한권이지

    그저 그렇게 ‘책임감’만 뼈저리고
    결국 죽을 때까지 변변한 ‘실천’ 하나 못할지라도
    그 무거운 짐 때문에 평생 뻐근하게
    살아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한 책이란 말이지

    그런데 내 서가에는 그 책이 없단 말이지
    아마도 내 책은 책 살 돈이 없다고 징징대는
    어떤 후배에게 가 있을 거란 말이지

    그 후배는 또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그 누군가는 또 누군가에게…
    결국 그 책이 지금은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더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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