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다 햇빛 탓이다.

황인종인 동양인들 역시 자연에 순응하면서 정신세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살았으며, 위계질서가 분명한 사회를 이루었다. 한.중.일 삼국에서 장유유서가 확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유색인종은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운명의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백인들은 유색인종의 그런 면모를 간파하고 적극 이용했다. 아프리카를 발견하자마하 흑인종을 즉각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으며, 동양에서는 상류층을 협박하거나 유혹하여 정권을 장악하고는 손쉽게 식민지로 삼았다.
백인종이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노예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살지 않았을 것이다.

─ 박영수(지음), <<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 살림지식총서021

사무실 여기저기에 천덕꾸러기처럼 굴더다니던 이 책을 집어들 때만해도 나는 이런 장난을 쳤다. 즉 이 책의 앞날개에는 저자 소개 밑에 “나는 이 책을”하고 “관심사와 연구계획은”이라는 제목들로 저자가 한 마디씩 하는 난이 있는데 이걸 보고 나라면 이런 식으로 쓰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썼다.

관심사와 연구계획은
없다.

그런데 몇 장 읽다가 그만 위에 인용한 구절을 만났던 것이다. 나는 그만 할 말이 없어져 이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Posted in 블루 노트.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