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나봐

커트 보네것(지음), 노종혁(옮김), <<저 위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나봐>>, 새와 물고기, 1994

웃자고 보면 웃기는 책이다. 좋게 말해서 재기발랄한 유머─이런 유머를 블랙 유머라고 하는 모양이다─가 있고 나쁘게 말해서 황당무계하다. 농담의 백미는 이렇다.

“지구시간으로 기원전 203,117년, 세일로는 기계상의 문제로 태양계에 착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주선 동력장치에 있는 지구의 깡통따개 크기 정도의 작은 부속품이 완전히 망가지는 바람에 착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세일로는 타이탄에 임시로 숙소를 정하고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트랄화마도르에 알렸다. 그는 빛의 속도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는 트랄화마도르에 도착하는 데 지구시간으로 150,000년이 소요될 것이었다.”

“회신은 현재 영국에 있는 한 평야에 커다란 돌로 씌어 있었다. 이 회신의 잔재는 아직도 서 있고, 스톤헤인지라고 알려져 있다. 위에서 본 스톤헤인지의 의미는, 트랄화마도르 언어로는 이러했다 : ‘교체부품이 가능한 한 최고의 속도로 가고 있음.’
세일로가 받은 메시지가 스톤헤인지뿐인 것은 아니었다.
지구에 씌여진 것은 모두 네 개였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위에서 보면 트랄화마도르 언어로 이러햇다 : ‘조금 참을 것, 자네를 잊지 않고 있음.'”

잘라 말해서, 지구의 역사란 어느 행성에서 특별 임무를 주어 우주 반대편으로 파견했던 사일로(라는 기계)에게 고장난 우주선 수리에 쓸 쇠조각 하나를 전달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 임무란 알고 보니 안녕하슈?, 하고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지금 장난하냐? 소리가 절로 난다. 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하다. 문제의 쇠조각을 그냥 또 하나의 우주선에 실어 보내면 됐지 구태여 뭐하러 이런저런 복잡한 일을 만들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무려나 나 알 바 아니다.

요즘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하나씩 꺼내 읽고 있는데, 이 책도 그 일환이다. 알라딘을 검색해보니 이 책은 <<타이탄의 미녀>>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가 다시 절판되었다. 원제는 The Sirens of Titian이다. 이 책을 뭐 소장씩이나 하게 된 에피소드와 소회도 있다만 떠벌일 만한 일은 아니다.

Posted in 날림 독후감 and tagged .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