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창문 열기, 혹은 닫기, 닫아 버리기

결혼 전에 제가 쓰던 방에는 상우네 꺼보다 더 큰 창문이 있었는데요
어머니는 그 창문에서 잘 보이도록 해마다 나팔꽃을 심으셨고요
저는 그 창문 옆에 책상을 놓고 심란한 청춘의 담배만 피워댔드랬죠
어느 해 그 창문 창살에 거미줄이 쳐지고
그 거미줄에 꿀벌이 반쯤 먹힌 채 매달려 있었고요
바람 불고 비가 내리면 그 창문에 대추나무 그림자가 불안스레 흔들렸드랬죠
창문 너머 담장 아래 골목에는 보안등 하나가 전봇대에 매달려 있었고요
자려고 불을 끄면 그 보안등의 불빛이 천장에 또 불안스레 어른거렸드랬죠

그때 이런 걸 썼었드랬죠

“바람이 검은 나뭇잎 사이를 서걱거리며 지나갔다 골목길 보안등의 치마 불빛 속으로 이따금 불나방들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눈부신 은빛 날개를 파르르 떨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투신해갔다 그 풍경위로 빗금을 그으며 비가 내렸다”

에잇, 그만 할래요, 그만 잘래요, 괴로왔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괴로워요.

─ 넌꾸님의 중부지방 새벽에 많은 비에 대한 트랙백

밤 버스

텅 빈 수족관의
뒷자리에 앉아

아저씨, 우리 바다로 가요.
아저씨, 우리 바다로 가요.

아저씨, 아저씨,
우리,
바다로 가요.

(담배를 피우고 싶다)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문지시선 90

냄새에 민감해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냄새에 민감해졌다. 버스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사내에게서 자꾸만 갈비집냄새가 났다. 역겨웠다. 그 냄새를 역겨워하는 나 자신도 역겨웠다. ‘골을 뽀개고 빛을 쪼이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지금 여기가 아닌 세계를 향한 임계지점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고 쓰면 거짓일 것이다. 그럼 이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