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콘래드의 아내

윌리엄 케인(지음), 김민수(옮김), <<거장처럼 써라>>, 이론과 실천, 2011

“조셉 콘래드는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아내에게 밖에서 문을 잠가달라고 했다. 그래야 비로소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몇 시간 후 점심을 먹기 위해 방에서 나오자 아내는 그에게 오전 내내 무슨 작업을 했냐고 물었다. 그는 ‘쉼표를 하나 뺐소’ 라고 대답했다. 점심을 먹은 후 그는 다시 방에 틀어박혔고 아내는 또 문을 잠갔다. 몇 시간 후 콘래드가 다시 저녁을 먹기 위해 방에서 나오자 아내는 오후에는 무슨 작업을 했냐고 물었다. 콘래드는 ‘오전에 뺐던 쉼표를 다시 집어넣었소’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셉 콘래드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으이구, 이 화상아!

고래

천명관 (지음), < <고래>>, 문학동네, 20??

천명관의 소설 < <고래>>에는 법칙이 많다. 아래 인용된 두 번째 문장, 즉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를 읽는 순간에 앞 부분 어딘가에 비슷한 문장이 있었다는 걸 인지했고, 세번 째 문장 “그것은 유전의 법칙이었다”를 읽는 순간부터 모종의 예감에 사로잡혀 해당 문장과 쪽수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그 결과물이다. 내가 가장 애정했던 법칙 앞에는 괄호로 추임새를 넣어 놓았다. 혹시 누락된 법칙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메모한 상태에서 다시 하나하나 확인해 보지 않았으므로 쪽수가 틀릴 수도 있으며, 내가 읽은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것으로 판권 페이지가 뜯겨나가 몇 번째 판인지 모른다. 따라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과는 쪽수가 다를 수도 있다. 구차하게 도망가기 바쁘다. 뭔 상관이람.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p. 23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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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 책들, 2010

작가님, 글쓰기를 마치고 외출을 하신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는 도중에 작가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후닥닥 서재로 올라가서는 거기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천상 작가다.

작가님, 목하 외출중이시다. “그는 눈은 카메라, 귀는 녹음기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병이다. 직업병.

작가님, 몸은 타자기 앞을 떠나셨으나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생각이 많고, 질문이 많다. 그리하여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를 격리시키고 옆으로 밀어 놓으면서 사회인으로서 나의 패배를 시인했다. 나는 평생 동안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제시켰다. 그들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내가 환영받고 포옹받으며, 여기 사람들 사이에 끝까지 앉아 있을지라도 나는 결코 그들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래야 작가님이시지.

작가님, 외출에서 돌아오셨다. 피곤하시다. 피곤하면 누워 양이나 세시지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또 생각의 탑을 쌓으신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누가 내게 말하는가?” 맨날 묻기만 하면 뭐하나? 써야지. 써야 작가지.

작가님, 하물며 또 다짐도 하신다. “일에 실패하지 말자고. 다시는 언어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얇은데 지겹게 읽었다.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씀, <<삼성을 생각한다>>, 사회평론, 2010

1.
지난 주 수요일 저녁, 노모를 모시고 어디를 좀 다녀 오는 길에 핸드폰이 울리는데 받을 수가 없었다. 통화 버튼을 눌러야 통화가 되게끔 설정을 해 놓았는데 통화 버튼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눈 뜨고 부재중 전화 1통이 단말기에 찍히는 걸 내버려 둘 수 밖에 없었다. 핸드폰을 껐다 켜서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요일, 아무 일도 없었다. 금요일 아침, 일어나 습관처럼 핸드폰 슬라이드를 밀어올리니 핸드폰 액정이 나갔다. 대란이다. 껐다 켜니 다시 들어 온다. 별일 아니군. 그런데 결국 별일 아닌 게 아니었다. 액정은 저 스스로 보였다 안 보였다를 반복했고, 전화를 오면 받을 수 없었으며, 문자를 받으면 무슨 내용인지 알 길이 없었다. 금요일 밤, 누군가가 새로 장만한 자신의 아이폰 구경도 시켜주고, 술도 사주고 그랬다. 그는 내 핸드폰이 때 맞춰 식물 핸드폰이 된 건 다 아이폰을 마련하라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시라고도 했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식물 핸드폰의 전원을 인가했다 해제했다 해가며 버텼다. 아이폰이 눈에 아른 거렸다. 화요일, 결국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AS기사는 핸드폰의 위쪽 판과 아래쪽 판을 연결해 주는 케이블이 상했다고, 교환해야 한다고 15분 정도 걸린다고, 언제 구입한 거냐고, 그러면 무상수리는 어렵고 비용이 좀 발생할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비용이 거액이기를 속으로 빌었다. 홧김에 서방질 할 작정이었다. 불행중 다행인지 다행중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용이 얼마 안 됐다. 아이폰은 내 것이 아니었다. 수리를 마친 AS기사가 조그만 쪽지를 내밀었다. 자신이 얼마나 친절했었는지 표시해 달라는 거였다. 매우 친절!
그런데 아니었다. 집에 왔는데 버튼을 조작할 때 켜지는 백라이트가 들어오질 않았다. 여러 가지 하는군! 다시 버스 타고 가서 번호표 뽑아서 기다렸다가 차례가 왔길래 접수대 직원한테 여차저차 하다 말했더니 오전에 서비스 받았던 거면 직접 기사한테 가라고 했다. 끙. 갔다. 가서 살짝 불평했다. 이거 안 된다. 오고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교통비도 썼다. 이게 뭐냐? AS기사는 자신이 교체한 부품과 이 증세와는 무관한 거라고 살짝 변명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뜯어봐야 알겠으며 추가비용발생 여부도 마찬가지란다. 기다리란다. 이거 메피스토펠레스가 곱게 안 지나가는군! 천장에 매달린 텔레비전에서 철지난 ‘1박2일’ 을 멍청히 보며 시간을 죽이는데 AS기사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내 핸드폰의 윗부분 케이스를 통째로 거저로 교환해주었다고 생색을 냈다. 중고차 도장을 새로 해준 것도 아니고 아예 차 껍데기를 새걸로 바꿔준 셈이었다. 핸드폰에서는 광이 번쩍번쩍 났다. 아이폰은 물 건너 갔다. 수요일 밤, 전화가 오는데 낯선 전화번호가 찍힌다. 받으니 그 AS기사다. 수리 받은 핸드폰 이상없이 잘 쓰고 계시냐는 거였다. 시계를 보니 7시 반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고맙다고 어서 퇴근하시라고 말해주었다. 이게 우리가 아는 삼성이다. 이 책에는 또 하나의 삼성이 있다.

2.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비자금의 세계이다. 비자금은 “회계에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은 자금”을 말한다. 이 책은 비자금의 세계를 살아가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다.

타워

배명훈(지음), <<타워>>, 오멜라스, 2009

당신은 당신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였지. 나는 나의 독후감을 한 줄에 줄인다. ‘번뜩이는 기상과 농담!’ 이로써 독후감은 끝났다.

이하 번외 편:

1.
이 변기에 이어지는 오수관의 먼 저쪽 어딘가에는 이 도시의 똥오줌을 받아 처리하는 분뇨처리장이 있을 것이다. 그곳은 당연히 이천년 동안 안 빨아 입었다는 저 전설적인 도깨비 빤스보다 더 냄새 나고 더 더러울 것인데 한겨울 아침 나는 변기에 앉아 분뇨 처리장의 더러움에 내 육신에서 나온 더러움을 더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중이다. 배명훈의 타워를 읽고 촉발된 이 분뇨 같은 글은 곧 <<타워>>에 관한 분뇨가 넘쳐나는 인터넷 분뇨처리장에 합류할 것이므로.

2.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에 글쓰는 게 꼭 똥 싸는 거 같다.

3.
50만명이 사는 거대한 타워, 빈스토크의 분뇨는 다 어디로 가나? 내가 무슨 뉴욕 센트럴 파크 연못 오리들이 겨울에 연못이 얼어붙으면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하는 홀든 콜필드 류는 아니다만 난 저게 궁금했다. 배명훈, 한 편 부탁한다. 수직주의자들의 똥과 수평주의자들의 똥이 만나 두둥실 어루러지는 이 아리땁디 아리따운 ‘더러운 세상’에 대하여!

4.
그래 니똥에서는 꽃향기 나고 내똥에서는 똥냄새 난다, 새꺄.

5.
여옥이가 역겨운 만큼이나 미애도 역겹다. 저 둘이 같은 종자라는 걸 어떻게 논증할 수 있을까?

6.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제6부 대장정을 다시 읽을 것. <스탈린의 아들은 이 굴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거친 러시아 욕설을 하늘에다 외치면서 그는 수용소 주위의 담장을 이루고 있는, 전기가 흐르고 있는 전선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철조망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제는 결코 영국인들에게 변소를 더럽혀주지 않을 그의 육체가 그 속에 걸려 있었다.>나 <스탈린의 아들은 자신의 삶을 똥 때문에 버렸다. 그러나 똥을 위한 죽음은 무의미한 죽음이 아니다.> 같은 문장들이 있다.

7.
그리고 새삼스럽게 묻는다. 문학은 무엇인가?

8.
그나마 4번 문장이 제일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