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投身

1.
나는 내 몸이 무섭다. 모든 욕망의 본거지다.

2.
나는 정신이 아니다. 몸이다. 지금까지 몇 십년을 ‘정신’에 투자했지만 남는 게 없다. 정신분열의 언어와 잡다한 지식과 내면에서 가파르게 출렁거리는 자의식. 이딴 거 전혀 쓸 데 없다. 그나마 이것도 최근에 뛰어보고 깨달은 것이다.

3.
投身,
나로부터 가장 먼 곳에 나를 던져버리는…

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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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제 내면에 저런 걸 끼고 산다.
저건 난무, 어쩌면 그저 지랄.

나는 예전에 이렇게 썼다.
“적당한 지랄은 정신건강에 좋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지랄 같다,고 말할 때
그건 무한한 애정 표현이다.

 
 
 
 
 

─ 이 밤의 지랄의 끝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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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당(作黨)

일단 창당을 하면, 자유와 민주와 정의와 번영과 발전 등의 명분을 내걸고 정치나 뭐 이딴 걸 해야 한다. 반면에, 같은 당을 만드는 거지만, 작당을 하면 저런 허울 좋은 명분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다. 그저 삥땅이나 뜯고, 사고나 치고, 양아치 짓이나 하면 딱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과 작당을 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늘…
그래도 명색이 당은 당이니 당명은 하나 있어야겠지. 이건 어때. 민주작당당 혹은 따위당.

폐문 閉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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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또 당신인가.
당신이 또 문을 열고 들어오는가.
그러나 당신이 나를 향하여 열고 들어오는 모든 문은 다
폐문이다.
그 문 안에 나는 없다.
이 세상 모든 문이라 이름 붙은 것 뒤에 나는 없다.

만년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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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가 다른 두 개의 만년필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 쟝 그르니예, <<섬>>

누군들 안그랬으랴만 나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부러웠다. 해서 소시적엔 펜글씨 교본을 사다가 연습을 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글씨체를 흉내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 오른손은 이미 너무 오랜 세월동안 나쁜 글씨체에 익숙해져 있어서 쉽게 교정이 되지 않았다. 최후의 방법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왼손으로 몇 번 글씨를 써본 다음에 나는 나쁜 글씨체가 단지 ‘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른손으로 쓸 때 드러났던 꼴 사나운 글씨체는 왼손으로 쓸때도 그대로 드러났다. 문제는 내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글씨체였고, 글씨 잘 쓰자고 머리통을 딴 걸로 바꿔 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이유때문에 “그러니, 얘?”의 <<섬>>을 집어들었는데, 무심코 몇 장 넘겨보니 저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게 언제였던가?

만년필, 참 잃어버리기도 숱하게 잃어버렸다. 누이에게 대학입학 선물로 받았던 만년필은 어디로 갔지? 아피스 만년필은? 가장 최근에 잃어버린 건 초록색 워터맨이다. 역시나 술 집에서 술 먹고……지금 가지고 있는 만년필은? 로트링 아트펜 Extra Fine! 이게 제일 만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