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동굴 메모

나, 오래도록 갱도를 파들어갔으나
아무데도 당도하지 못했다.
‘여기가 막다른 곳이로구나.’
그 어둡고 긴 갱도를 거슬러 나오며
나, 괴로웠다고 말해야 하나.
그로부터 다시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내 가슴에는 아직 비밀의 동굴이 남아 있어
나, 가끔 동굴의 입구에 서서
저 어두운 안쪽을 들여다 본다.
그러나 들여다 보기만 할 뿐
저 안으로, 저 텅 빈 내부로 들어가 볼 용기는 없다.
어쩌면 저 속에는 내가 아직도
저쪽으로 통로를 만들지 못했던 내가 여전히
절망적으로 굴을 파고 있을 것만 같아서.

모든 게 다 햇빛 탓이다.

황인종인 동양인들 역시 자연에 순응하면서 정신세계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살았으며, 위계질서가 분명한 사회를 이루었다. 한.중.일 삼국에서 장유유서가 확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유색인종은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운명의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백인들은 유색인종의 그런 면모를 간파하고 적극 이용했다. 아프리카를 발견하자마하 흑인종을 즉각 노예로 부리기 시작했으며, 동양에서는 상류층을 협박하거나 유혹하여 정권을 장악하고는 손쉽게 식민지로 삼았다.
백인종이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노예의 처지를 받아들이며 살지 않았을 것이다.

─ 박영수(지음), <<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 살림지식총서021

사무실 여기저기에 천덕꾸러기처럼 굴더다니던 이 책을 집어들 때만해도 나는 이런 장난을 쳤다. 즉 이 책의 앞날개에는 저자 소개 밑에 “나는 이 책을”하고 “관심사와 연구계획은”이라는 제목들로 저자가 한 마디씩 하는 난이 있는데 이걸 보고 나라면 이런 식으로 쓰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썼다.

관심사와 연구계획은
없다.

그런데 몇 장 읽다가 그만 위에 인용한 구절을 만났던 것이다. 나는 그만 할 말이 없어져 이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결심

내가 가장 마지막에 한 결심은 두번 다시 아무런 결심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마지막 결심에 새로운 결심 하나를 보태기로 했다. 육체적으로 배고픈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벌써부터 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