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커서 2

무엇인가 간절해
이쪽 끝에 매달려 있는 나는
그대가 그쪽에서 세상을 들고 나는 걸 본다
내 모니터 속에 참 부지런한 헤르메스가 있어
네가 들어왔다고 알려줄 적마다
내 커서는 용기를 내어 너에게 가지만
번번이 너를 만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되돌아온다 기억하는가

지금 상류를 더듬어 오르는 연어는
제 생애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기억은 내력벽과도 같아
힘없이 무너져 내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한조각의 벽돌도 빼어낼 수 없다 요즘은
둑이 넘치는 것도 무섭질 않다 결국
우리가 로그인한 세상은 우리가 원하던 세상은
아니었다

나 이제 너를 향해 내밀 수 있는 건
이 부끄러운 커서 밖에 없어
그대 손인 듯 마우스를 움켜쥔 채
나는 이 쓸쓸한 주소를 떠나지 못한다
나 여기 있다 211.105.92.76 끝에 있다
간당간당 매달려 있다

출정가

“저녁 무렵에는 구름과 절묘한 북소리를 내는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잠시 동안 시원하게 내렸다. 오스카의 피곤해진 양철북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