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새삼스럽지만 나라에 역병이 창궐하고 있다. 6월 23일, 문제의 ‘그 병원’에 진료예약이 되어 있다. 때가 때이니 만치 한 달 뒤로 미루려고 ‘그 병원’에 전화를 건다.

통화 불가. 전화가 많아 통화가 불가하다, 잠시 후 다시 걸어 달라, 고 기계가 답하며 기계가 전화를 끊는다. 아쉬운 건 나니까 기계가 시켜도 군말 없이–사실 군말을 해도 들어줄 기계도 사람도 없으므로–잠시 후 다시 건다. 잠시 전과 달라진 게 없다. 통화 대기음 듣다가 통화 불가. 때가 때이니 만치 통화 불가. 기계가 응답하는 똑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서 듣느라 얼마 되지도 않는 내 한 달치 음성 통화 시간의 절반을 써도 통화 불가. 통화 불가. 통화 불가. 포기. 이게 오전 상황이다.

오후에 다시 시도한다. 마찬가지다. 달라진 게 없다.

맞다. 어플이 있었다. 나는 뒤늦게 스마트한 생각을 떠올린다. 앱스토어에서 병원 어플을 검색해서 설치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회원가입, 더 내키지는 않지만 주민등록번호 입력. 회원 가입창 양식에 슬쩍슬쩍 들어 있는, 문자 수신 동의, 메일 수신 동의 따위의 칸 집요하게 선택 해제. 가입 완료. 드디어 로그인, 진료예약 변경 페이지 추적, 드디어 예약 변경 시도. 

“동일과 내 진료예약 변경은 사전에 전화 문의하여 주십시오.”라는 멘트와 함께 전화 번호가 나와 있다. 훌륭한 어플이다. 어플에 나온 번호는 내 진료카드에 적힌 대표번호나 예약번호와 다른 번호다. 직통번호인가 보다. 건다, 전화.

통화 안 된다. 뭔가. 이게 뭔가. 다시 한 번 건다. 가까스로 연결 된다. 눈물이 다 난다. 그런데,

헐.

전화 받으신 분 하시는 말씀. 자기는 해줄 게 없으니 전화 번호를 하나 알려줄테니 그쪽으로 전화하란다. 그 번호는 내가 지금까지 통화하려고 무수히 걸었으나 통화하지 못했던 바로 그 번호다. 뭐지? 돌고 돌아 제자리다. 뫼비우스의 띠인가? 그러면 그렇지.

역시 역병이 창궐하는 아름다운 나라의 초일류병원 답다.

전화에 대고 나는 다시 설명한다. 여차저차 하다. 나 전화 할 만큼 했다. 그런데 나더러 전화를 받을 때까지 죽어라 전화를 걸라는 말이냐, 니들은 웨이팅 리스트도 없냐, 오늘 18시 지나면 그나마도 전화 업무 종료할 거 아니냐, 오늘 성공 못하면 내일 전화 걸고, 내일 성공 못하면 모레 걸고, 그렇게 걸고 또 걸라는 거냐. 이렇게 말한다. 구차하다.

담당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만 한다. 아마 그는 내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죄송하다고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 되겠다. 나도 못 물러 선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나는 상급자를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누구요? 당신의 보스와 통화 하고 싶다. 안 되면 보스 찾는 거, 나쁘다. 아, 나 새끼는 나쁜 새끼, 우, 또라이 새끼 나 새끼. 그는 기다리라 한다. 기다린다. 내가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또, 따 다다 다다다다단, 따 다다 다다다다단, 하고 음악이 나온다. 기다린다.

마침내 누가 여보세요 한다. 그는 좀 전에 전화 받은 자신의 아랫직원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에이, 여보슈.

그러니까 저더러 그 번호가 전화 받을 때까지 전화하라구요? 오늘 하다 안 되면 내일 하고, 내일 하다 안 되면 모레 하고? 그렇게 될 때까지 하라구요? 그게 말이 돼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웨이팅 리스트 만들어서 오늘이든 내일이든 그쪽에서 전화 걸 수 있을 때 전화 걸어주면 되잖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자 그는 지금 당장 피드백 전화를 드려도 되는 게 아니라면 자기가 메모를 전달해 주겠단다. 나는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그게 원칙상 메모를 전해주는 게 안 되지만 내가 하도 ‘지랄을 해대니까’ 귀찮아서 메모를 전해주겠다는 거냐, 고 묻는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그런 게 맞는 거 같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랄을 해야한다.

어쨌든, 이리하여, 병원님, 귀측에서 시간이 나실 때 모쪼록 이 못난 환자한테 전화 좀 해주십시오. 오늘이든 내일이든 모레든 소인은 그저 전화만 걸어주시면 황공하옵니다요, 라는 진료예약변경 요청 메모를 전달. 이게 뭔가.

그러고 이십 분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진료예약변경 해준단다. 고맙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아니하다.

책상 정리

책상 위에 잡다한 물건들이 너무 많다. 읽고 쓰는데 필요한 것만 빼고 다 버리자. 개뿔. 꿈같은 얘기다.

앞으로는 책상을 책상이라 부르지 않고 작업대라고 부르겠다. 내 책상 위의 것들은 다 내 작업에 꼭,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히겠다. 아무렴.

책상 정리하지 않을 것이다. 됐다. 이제 됐다.

정신이 산만하고, 영혼이 잡다하며, 마음이 번잡한 인간은, 그에 딱 맞는, 지저분하고, 너저분하고, 잡다하고, 우우, 더러운, 그런 책상을 갖는 거다.

공구 상자

마트에서 공구 상자를 보았다 크고 좋았다 공구 상자에 들어 앉아 망치랑 마냥 놀고 싶었다 공구 상자 손을 잡고 계산대를 무사히 지날 수는 없었다 공구 상자를 두고 오는 발걸음이 오함마처럼 무거웠다 마트 가고 싶다 일산백병원 상가에 다녀온 23시 52분 집에도 공구 상자는 몇 개 있다 친구에게 얻은 프랑스제 메이크업 가방도 나는 공구 상자로 쓴다 책상 위에는 대패가 있다 상가에서 고교 동창에게 포트란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포트란이라는 단어가 반가운 사람은 코볼이라는 말도 그리울 것이다 그리운 것은 많다 마트 가고 싶다 마트 가서 공구 상자 구경하고 싶다 넋놓고

멀리

커가는 아이들, 점점 집에서 멀리까지 갔다 온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온다. 아직은 내가 가본 곳에만 간다. 인사동, 광장시장, 홍대앞. 더 크면 더 멀리 갈 것이다. 내가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곳에 갈 것이다. 토요일에 지 엄마한테 옷 사달래서 새옷 얻어입고, 일요일에 어디를 하루종일 싸돌아 다니다 다저녁에 들어온, 오늘은 친구와 노량진에 간다던 1호는, 작전이 변경되었는지, 아직 잔다. 한 시간 전에 롯데월드 간다고 아침도 아니 먹고 현관문을 나선 녀석은 2호다. 3호는 아직 어디 안 간다. 학교, 집, 학교, 집, 어쩌다가 친구집, 이게 전부다. 토요일에 동창 여남은 명과 초등학교 적 선생님 찾아 뵙고 짜장면 곱배기 얻어 먹고 온 3호는 지금 거실 쇼파에서 스마트폰으로 만화 본다. 늦은 밤에, 그러니까 밤 열두 시도 넘은 시각에 막내 하복 상의 두 벌을 다림질하며 텔레비전을 보던 아내도 잔다. 2호가 현관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깬 나는 ‘파파’ 하며 집으로 돌아온 베로니카를 생각한다. 부처님오신날 아침, 구구꾹쿠 구구꾹쿠, 비둘기 우는 소리 들린다.

오늘의 문장

“철새는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시기와 머무는 시간에 따라 다시 여름철새, 겨울철새, 나그네새(통과철새), 길잃은새(迷鳥, 미조)로 나눈다. 여름철새는 봄에 와서 번식한 후 여름과 가을에 월동지로 이동하며, 겨울철새는 가을에 와서 겨울을 지낸 뒤 이듬해 봄에 번식지로 이동한다. 나그네새는 우리나라 이외의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다가 봄과 가을에 우리나라에 잠시 들르는 새를 말하며, 길잃은새는 이동 경로상 우리나라에 규칙적으로 오지 않지만 길을 잃거나 경로를 이탈해 우연히 찾아든 새를 말한다.”

–박진영(글.사진), <<새의 노래, 새의 눈물>>, 필통 속 자연과 생태, 2010, 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