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의 포괄적 의미와 배타적 의미

“여기에는 고려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이거나(or)’하는 단어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보통 ‘p거나 q다’는 p와 q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참이거나 둘 다 참인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거나’라는 단어의 ‘포괄적’ 의미라고 불린다. 논리학에서는 보통 이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때로 ‘이거나’를 ‘배타적’ 의미로 쓰기도 한다. 즉 ‘p거나 q다’는 p와 q 가운데 적어도 하나가 참이지만 둘다 참은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육로로 오거나 해로로 올 것이다’는 그들이 동시에 육로와 해로로 오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 경우는 만일 그들이 어느 한 길로 온다면 다른 길로는 오지 않는다고 추론할 수 있다.

선언 삼단논법은 ‘이거나’가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에 상관없이 타당하다. 검토해보라. 그러나 ‘p거나 q다’와 같은 진술에서 추론해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구체적인 ‘p거나 q다’라는 전제에서 ‘이거나’가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에 달려 있다. 당신이 p를 알고 있을 때 ‘q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여부를 가릴 때 특히 그렇다. 이 점을 주의하라!”

—앤서니 웨스턴(지음), 이보경(옮김), <<논증의 기술>>, 필맥, 2009(1판 14쇄), p.116

그 많던 싱아 같은, 내 오징어채무침은 누가 다 먹었을까

이런 불효자식을 봤나. 나는 오징어채무침을 한 가닥 한 가닥 아껴 먹는데 녀석은 한번에 수십 가닥을 덮석덥석 집어먹는다. 오매 아까운 거. 네 몫은 다 먹었으니 이제 그만 먹으라며 녀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반찬을 옮겨 놓는데 아뿔사, 거기는 아내의 젓가락 사정권이다. 할수없이 오징어채를 원위치시킨다. 나는 나의 유치함에 치를 떨며 독백을 시작한다.

“나는 나쁜 아빠야. 나는 나쁜 남편이야. 나는 나쁜 인간이야. 나는 나쁜 동물이야. 나는 생물이야. 나는 나쁜 물질이야. 나는…”

“아, 시끄러!”

꽥,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뭐 내 생각해도 시끄러우니 별 불만은 없다. 더구나 ‘물질’까지 갔으니 단어도 금세 동날 판이다.

“나는 시끄러운 물질이야.”

나는 잔뜩 움추러들며 모기 소리만하게 말한다. 딸아이가 먼저 피식 웃고 아내도 덩달아 피식 웃는다. 나는 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짧은 경련

북적이는 밤거리를 걷다가 마주 오던 사람과 어깨를 살짝 스치는 순간, 남자는 상상 속의 여자에게, 방금 저 자식이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어, 가서 혼내줘, 라고 말했다. 상상 속의 여자는, 아니, 어떤 새끼가 감히 우리 오빠 어깨를 쳐, 너 오늘 제삿날이야, 하면서 죄없는 행인을 쫒아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당황한 듯, 남자가 여자를 말리는 시늉을 하자, 여자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간 행인을 향해 애써 씩씩거리며, 애써 분을 삭이는 시늉을 하며, 너 오늘 운좋은 줄 알어, 우리 오빠 건드리고 무사한 놈은 네가 처음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는 상상 속의 여자가 없고 그래서 남자는 조금 외로워졌다. 남자가 그렇게, 짧은 경련을 앓아내는 사이에 일행은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