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 같은, 내 오징어채무침은 누가 다 먹었을까

이런 불효자식을 봤나. 나는 오징어채무침을 한 가닥 한 가닥 아껴 먹는데 녀석은 한번에 수십 가닥을 덮석덥석 집어먹는다. 오매 아까운 거. 네 몫은 다 먹었으니 이제 그만 먹으라며 녀석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반찬을 옮겨 놓는데 아뿔사, 거기는 아내의 젓가락 사정권이다. 할수없이 오징어채를 원위치시킨다. 나는 나의 유치함에 치를 떨며 독백을 시작한다.

“나는 나쁜 아빠야. 나는 나쁜 남편이야. 나는 나쁜 인간이야. 나는 나쁜 동물이야. 나는 생물이야. 나는 나쁜 물질이야. 나는…”

“아, 시끄러!”

꽥,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뭐 내 생각해도 시끄러우니 별 불만은 없다. 더구나 ‘물질’까지 갔으니 단어도 금세 동날 판이다.

“나는 시끄러운 물질이야.”

나는 잔뜩 움추러들며 모기 소리만하게 말한다. 딸아이가 먼저 피식 웃고 아내도 덩달아 피식 웃는다. 나는 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짧은 경련

북적이는 밤거리를 걷다가 마주 오던 사람과 어깨를 살짝 스치는 순간, 남자는 상상 속의 여자에게, 방금 저 자식이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어, 가서 혼내줘, 라고 말했다. 상상 속의 여자는, 아니, 어떤 새끼가 감히 우리 오빠 어깨를 쳐, 너 오늘 제삿날이야, 하면서 죄없는 행인을 쫒아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당황한 듯, 남자가 여자를 말리는 시늉을 하자, 여자는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간 행인을 향해 애써 씩씩거리며, 애써 분을 삭이는 시늉을 하며, 너 오늘 운좋은 줄 알어, 우리 오빠 건드리고 무사한 놈은 네가 처음이야, 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는 상상 속의 여자가 없고 그래서 남자는 조금 외로워졌다. 남자가 그렇게, 짧은 경련을 앓아내는 사이에 일행은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그리운 쇼핑몰

“아무개님 주문이 발송되었습니다!!-Kxxxx SHOP”

이건 내가 방금 받은 문자야. 나는 그 발상의 참신함과 그 표현의 간결함에 정녕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남들은 다 상품을 발송하는데 이 쇼핑몰은 워매 주문을 발송하나봐. 그까짓 송장번호 따위야 개나 물어 가라지.

그리운 쇼핑몰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직막 주문이 된다 할지라도 느낌표도 두 개나 받았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메모

다음은 어떤 영화의 대사이다.

“꿈을 하나 꿨었는데요…
그림이 있었어요.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그림이었어요.
작은 마을에 비탈길이 나 있는데
양 옆으로는 집들이 서 있고
뒤로는 교회가 하나 있었어요.”
“샤갈의 그림이니?”
“샤갈은 아니예요. 빨간 벽돌로 지어진 높다란 교회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