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겟돈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어느 영화 채널에서 해주는 아마겟돈을 보고 있다. 심심한 일요일이다. 애들 데리고 어디 강원랜드라도 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에버랜드도 가 봤고 서울랜드도 가 봤으니까 남은 랜드는 강원랜드 밖에 없다는 말씀. 그건 그렇고.

영화를 보는데 하릴없는 무사의 여신께서 오셔서 영감을 나눠주신다. 나는 옆에서 한심한 영화를 심심하게 보고 있던 한심한 아들에게 묻는다. “엄마가 어디 가서 돈을 많이 가져 왔어. 그게 무슨 돈인지 알아?” 녀석이, 내 느닷없는 질문에 아빠가 갑자기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냉큼 답을 말해버린다. “아마 곗돈.” 농담이 썰렁할수록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녀석이 나를 쳐다 본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막내는 옆에서 특유의 표정으로 아, 그러세요, 한다.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농담을 못알아 듣다니. 자부지불온이면 불역부호아.

아니다. 나에겐 희망이 있다. 나에겐 딸이 있다. 딸이 빵 터진다. 빵 터져서 부엌에서 낮설거지를 하느라 내 브레이크스루한 농담을 놓친, 지 엄마에게 달려가 나의 위트를 전한다. 물론 아내의 반응도 아들녀석들과 비슷하다. 아내부지불온이면 불역남편호아. 도, 개, 걸, 윷, 모, 다 좋지만 딸이 최고. 딸 나와라.

저 갸륵한 여식이 내 농담을 듣자마자 내뱉은 말을 이 시점에 아니 기록해 둘 수 없다. “아빠는 정말 똑똑한 거 같애.” 용돈 인상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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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새벽 두 시에 스팸 문자 받고 잠에서 깨어 쓴다. 퇴고와 교정은 나중에. 스팸 문자 보낸 새끼도 삼대가 불면증에 시달리기를.

더 다정한 가족

일요일에 친구 따라 청담동 간다는 딸이 아내에게 용돈을 달라하자 아내가 아빠한테 가서 받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며칠 전 아내에게 고작 5만원을 빌렸는데 엊그제 딸 버스비로 1만원을 대신 주었으므로 현재 남은 빚은 무려 4만원인 것이다. 온다, 저기, 딸이. 빚 받으러 온다.

아빠, 만원 줘.

내가 순순히 내줄 리가 없다.

없다. 아빠 팔아 가져.

딸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가서 이른다.

아빠 팔아서 가지래. 어디다 팔아야 좋을까?

이때다. 틀림없이 안방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을 막내가 대꾸하는 소리가 들린다.

글쎄? 장기매매?

“사랑하기 좋은 날”

뭐라구요? 사막이 아름다운 게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렇다면 어딘가에 부자도 있으니까 가난도 아름다운 거겠군요.

다정한 가족

아침에 아내가 나한테 감히 우씨, 그랬다.
—우씨? 니가 폭력 남편을 경험을 안 해봐서 그러지?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이렇게 대꾸했다.
—너야말로 폭력 아내를 못겪어봤구나.
그러자 지나가던 딸이 이렇게 말했다.
—폭력 딸도 있어. 가출할 거야.

제목은 나중에

큰 생색을 내고 스킨십을 잔뜩 선불로 받은 연후에 아내가 들려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평천하하러 길을 나서는데 내 옆으로 제네시스가 지나가고, 내 옆으로 벤츠가 지나가고, 내 옆으로 SM5가 지나간다. 다들 하루치 길을 떠나는 것이다.

단언컨대—요즘 세상과 거의 완벽하게 절연하고 사는 지라 이 말이 왜 유행인지는 모른다—나는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부러워 한 적이 없지만 아 누구는 음식물 쓰레기 들고 나가는데 아 누구는 벤츠 타고 나가니까 이건 좀 그렇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으며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음식 냄새, 냄새, 냄새와 SM5.

내 오래 된 섬섬옥수에 남은 음식물 쓰레기의 핫한 냄새를 몸서리치도록 느끼며 단지 정문을 지나는데 며칠 전 새로온 경비 아저씨가 거수 경례를 한다. 거리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단 소속의 할머니 사람들이 한 손에는 비닐봉투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