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 두고 먼지가 쌓일 틈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읽어라!”

며칠 전 인터넷 서점에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오늘이 예정된 배송일이었는데 1월 2일에나 책이 도착하겠다고 오전에 문자가 왔다. 아이가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유감이군.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연말이라서 바쁜 모양이니 급할 것도 없는데 참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렇게 마음을 먹고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방학 하고 온 아이, 오자마자 책을 찾는다. 사정을 말해주니 실망을 해도 이만저만 하는 게 아니다. 남친한테 차여도 그 표정보단 낫겠다. 음, 혹시 모르니 전화나 걸어볼거나. 전화를 걸어 체감 시간 3분 동안 시키는 대로 이 번호 저 번호 눌렀댔더니, 허무하게도 한두 시간 이내에 피드백 전화를 준다는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고 전화가 툭 끊긴다. 기계한테 진상 부릴 수도 없고 난감하다.

전화 오기로 한 시간은 애저녁에 다 지나갔다. 그렇지 뭐, 잊어야지 뭐, 하고 있는네 “고객님의 상품은 09:00~12:00에 배송될 예정입니다”라는 문자가 온다. 날짜가 없으니 언제 온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데다가 오전인지 오밤중인지 시간이 또 애매하다. 책 따위가 무슨 고도도 아닌데 오기는 오는 건가.

베란다에서 컴퓨터용 ‘DB-77 강력먼지제거제’로 흡입력이 약해진 진공청소기 필터를 청소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포스트맨이 누르는 것도 아닐진대 벨이 두 번 울린다. 누구지? 아이가 나간다. 아빠, 책이야. 책이 왔어. 아이가 급방긋하며 뛰어 들어온다. 뜯어 보렴.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선물 대용으로 사준 몇 권의 책이 도착하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다저녁에 보통 때는 통 아니 울리는 집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 인터넷 서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로 달려가는 아이를 제지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받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강가딘입니다.” 헐, 일찍도 전화하시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55분이다. 순간, 여차 저차 해서 이렇고 저렇고 하니 이리 저리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려다가

날도 날인데다 텔레마케터가 무슨 죄랴 싶어서 “결론만 말씀드리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고 말았다. “예, 그러세요? 안녕히 계세요” 한다.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목은 함께 배달돼온 내 (몫의) 책에 인쇄돼 있는 문장이다.

나는 엣지가 없어요

엣지 세워봐야 소용없어요. 낸들 아나요. 대충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겠다는 뜻일걸요. 중요한 건 중요하지 않아요. 국가백년지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지 않으시겠어요. 어쩌면 환유가 답일지도 몰라요. 말 한 마디에 한 인간의 전모가 드러나기도 하는 거거든요. 오 유어 갓, 잇 댐 갓! 태평성대 엔조이 잘 하시고요, 그럼 좋은 굴삭기 되세요. 나는 엣지가 없어요.

오늘의 문장

“좋은상품 유정란은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암탉과 수탉을 같이 사육하여 건강한 암탉에서 생산된 유정란입니다.”

bb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당신과 나는 브라자와 브래지어의 차이와 거리와 거리와 차이 만큼이나 멀고 가깝고 가깝고 먼 그렇고 그런 허위의 진정한 브래지어와 브라자의 차이와 거리를 과감히 꿰뚫고 혁파하는 별 시답잖은 소울메이트적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였습니다 상상의 새가 겨울 하늘을 날아갑니다 상상의 새는 어디 먼 곳에 갑니다 미망에서 깨어난 상상의 새는 그러나 사실 갈 곳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