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뭘 좀 썼다. 그건 스마트폰 메모장 밖으로 발행될 수 있을까. 그건 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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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왜 그래요?
잘못 온 택배를 제 집에 가져다 주러 가다가 옆 라인 현관 앞 계단에서 넘어질 뻔 하였으나, 손에 든 핸드폰으로 계단 모서리를 살짝 짚어 대형 참사를 면하였도다. 마음 같아서야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고 맨손으로 짚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액정에 금이 갔길래, 강화유리가 또 갈라졌군, 별일 아니야, 갈아붙이면 돼, 가던 길 마저 가야지, 하며 수십수백수천 계단을 걸어올라 택배 상자를 주소지 문앞에 두고, 수십수백수천 걸음을 걸어 집에 돌아와 평소 유비무환 정신으로 수십수백수천 장을 사모은 강화유리를 꺼내놓고 깨진 강화유리를 떼어냈더니, 아 사고 당시 겉만 깨진 것이 아니라 속까지 깨졌던 것이었다.
거 세상 굽어보며 위에 계시다는 양반, 나한테 왜 그래요? 로또 사라는 뜻이에요?
나는 나인가
언어를 생각하는 대신, 아이폰으로 차창 밖을 찍는다. 저 불빛 속에 무엇이 있는가. 언어가 있는가. 모종의 그리움이, 모종의 안타까움이, 그리하여 결국 모종의 슬픔이 있는가. 저 창밖의 풍경을 잠시, 그러니까 10초, 15초 동영상으로 포박해 두면 나는 나인가. 이 영상을 그것에 이어 붙이면 그림이 되겠다 생각하는 나는, 단어와 문장에 괴로워 하던 나인가.
심부름 가기 싫다
아내가 빵가게 가서 빵 사오라는 걸 싫다고 하였다. 아내는, 싫으면 관둬라, 내 아들 시킬란다, 하였다. 그 아들들 다 디비 주무신다. 아니다. 한 분은 사실 일어나 유튜브 컨텐츠, 웹툰 컨텐츠, 뭐 이딴 거 과소비하고 계시지만 글의 재미를 위해서 그냥 다 잔다고 하는 거다. 지금이 토요일 오전 10시인데 이따 사위가 깜깜해질 때까지 아들들 다 쿨쿨 자면 좋겠다. 그래야 아내가 나라는 존재의 무지 유용함을 깨닳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싫다하면 심부름값을 주겠다든가 봄이고 나들이철이고 하니 포르쉐 한 대 뽑아주겠다든가 하며 딜을 해와야지 저리 순순히 물러설 줄은 몰랐다.
성기고 시끄러운 신호 sparse & noisy signal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 Event Horizon Telescope 으로 블랙홀 사진을 찍은/합성한 Katie Bouman이 칼텍 Caltec 에서 강연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처리해야 했던 신호가 아주 성기고 아주 잡음이 많았다고 말하는 것은 용케도 알아들었고, 그 표현에 뭔가 시적인 데가 있다고 느꼈다. 과학은 시하고 내통하는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아무거나 아무데나 갖다붙이고 싶어졌다. 당신의 신호는 가물가물하고, 게다가 주변은 시끌시끌하다니! 소주 한 병의 안주 단어로는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얘기, 아무한테도 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 듣는 귀가 이제는 없다. 당신에게 내 근황을 말해주겠다. 나는 물리학 책 읽고, 수학 책 일고, 철학 책 읽고 그러면서 지내고 있다. 심오한 거 읽는 거 아니다. 정적분이나 상대성이론,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뭐 이런 거 읽는다. 벚꽃 구경도 좀 했다. 시집 같은 거 안 사고, 소설도 읽지 않는다. 아이폰에 메모는 곧잘 하는데 따위넷은 잊었다.
애 셋 가운데 두 분은 대학생이 되셨다. 어엿한 거 같지는 않다. 막내는 엊그제 4.16에 제주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