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내[R]가 프랑스에 가기 전에, 우리가 연애하던 시절에 너[J]는 노상 상처가 어떠느니 하고 말하고는 질금질금 울곤 했었지. 그래서 난 수첩을 꺼내어 하얀 페이지를 펼쳐놓고 크게 <상처>라고 쓰고 난 뒤 무엇이 상처냐고 물었지. 그러자 너는 눈물을 거두고 맹한 눈으로 내가 쓴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지. 그리고 나는 설명했지. 인간의 심리나 감정이 어떤 외부적 자극에 의해 되어지는 결과를 너는 무조건 <상처>라는 단어로 일축해 버리는 데 쾌감을 느낀다, 이런 용어들로 세상의 모든 미세한 것들을 단순화한다는 것은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심히 옳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이제 다시는 이런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는 등의 말을 하며 수첩 위에 씌어진 글자 위에 힘차게 엑스(X)표를 했지. 기억이 나느냐?”

─ 하일지, <<경마장 가는 길>> 중에서

1990년, 한라산에 오를 때였다. 길은 가파르고, 바닥은 미끄럽고, 바람은 세차고, 구름 속이라 비가 내렸다. 나는 선두 그룹에 있었고 마음만 먹었다면 일행 중 제일 먼저 정상을 밟을 수도 있었다.

정상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을 때 지금까지 잘 따라오던 B가 뒤에 쳐졌다. 나는 1등을 포기하고 B를 에스코트 해주었다. 이런 얘기하는 건 우습지만 B는 내게 관심을 보이던 A의 절친한 친구였다. B에게 잘 해주는 내 기사도적인 모습(민망해라)을, A에게 보여줌으로써 점수를 좀 따려고 했었던 거다. (저 오빠 멋져!)

험한 길을 힘들게 오르며 B에게 딴에는 멋진 말을 해준답시고─어서 주워들은─니체가 “위험하게 살아라 Live Dangerously”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B의 반응은 예상외로 씨니컬했다. 나는 마음이 상했으나 그렇다고 삐져서 B를 남겨 놓고 가버릴 수는 없었다. 나의 천사 A는 산도적같은 과동기 놈과 함께 저 앞에 가고 있었다. (아쉬워라.)

그때 나의 확 잡친 기분을 나는 지금까지도 미세한 <상처>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 나 쪼잔하다.) 이것을 <상처>라는 말로 “단순화”하지 않으면 무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무튼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B는 여행지에서 잠시나마 제 친구를 앗아간 나를 적절하게 응징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오랜 만의 80bytes

나: 경포대요 파도 소리가 좋소 잘 자오

아내: 심히 부럽소 나도 파도 소리 좋아한다오 낼 봅시다

#992

몇 번인가, 다용도실 너머 창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깨어나 이러다 폐인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폐인이 되기는 싫었으므로 폐인이 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새벽마다 회개해야 할 일이 많았으나 나는 회개하지 않았고 대신에 어떤 치욕이 양변기 속의 물처럼 차올랐다. (계속)

노래 하나

술을 마신 다음 날은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아주 지랄 같다.
어제는 하루 종일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이야기를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 보리라”

검색해서 링크라도 하려 했으나
뜻대로 안 되서 그만 둔다.

언제 노래방 가면 내 한 번 불러드리겠다.

p.s.
아래 링크는 화면은 영 깬다만 노래는 내가 원하던 노래다.
부모(김소월 시, 문주란 노래)

내 마음의 팝업창

틈만 나면 내 자의식의 표면 위로 사람 화들짝 놀라게 뜨는 팝업창이 몇 개 있다. 그때마다 “오늘은 이 창을 열지않음”을 누르며 얼른얼른 닫아버리지만 오늘은 너무 짧고 팝업창은 너무 자주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