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무

지난 해 언젠가 인부들이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을 마구 자르고 있는 게 보였다.
알아보니 새로 부임해 온 관리소장이 조경차원에서 자르라고 지시를 했다 한다.
마음에는 무지 안 들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 갔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저 나무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나무들이 마구 연초록을 밀어올리는 봄인데 아파트 곳곳에 저런 불구의 나무들이 서 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 등쌀에 단발 고무줄총을 급조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이들 다 데리고 13:30까지 성당으로 오라는 아내의 명령이다.
물론 나는 삐딱하다.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아내가 재빠르게 대답한다.
“계란 준대.”
“오, 계란을 공짜로 줘? 그럼, 가야지. 알았어.”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당했다는 느낌도 들고
내가 사실은 퍽 단순한 인간이라는 자각도 든다.

계란 얻어 먹으러 가려면 앞으로도 70분이나 남았다.
이 사실을 공표하면 저것들이 좋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댈터이니
출발 직전까지 비밀에 부쳐야겠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이렇게 써야겠다.
오늘 밤에도 낮에 먹은 계란이 바람에 스치운다

자작나무는 죄가 없다.

아파트 단지가 조경 공사 문제로 시끄럽다. 단지 외곽의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잣나무를 심자는 것이다.

자작나무가 키가 커서 다른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며, 미관상 좋지도 않고, 가을에 낙엽이 지면 치우기도 힘들다는 것이 공사를 하자는 사람들 입장이다. 입주자대표와 각동 동대표들이 공사를 하기로 결정했고, 그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물었는데 70%가 넘는 주민들이 찬성을 했다고 한다. 이미 외부업체 선정까지 끝나 내일 4일(수요일) 아침 8시부터 나무를 자른다고 한다.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오늘 “불법” 모임을 가졌다. 가서 들어보니 반대파의 주장은 첫째,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아이들만 있는 집에 와서 찬성표를 받아간 경우도 있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조경 공사를 하려고 하는데 찬성하느냐고 물어 조경공사하면 좋겠지 뭐, 라는 단순한 생각에 찬성표를 던진 경우도 있다. 둘째, 경비 문제다. 입주자대표회의는 장기수선충당금인가 뭔가를 유용하고 나중에 부녀회 기금으로 보전한다고 하는데 부녀회에는 그만한 돈이 없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내용이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기라는 것이다.

수 십 여명이 모여 한 마디씩 하느라 의견이 분분했으나 일단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고, 내일 아침에는 공사를 강행하지 못하도록 “실력 저지”에 나서자는 결의를 했다. 법원에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야한다는 데도 의견이 모아졌다. 입주자대표는 일부 주민들이 실력 저지에 나설 경우에는 업무집행방해로 고발까지 불사하겠다고 했단다.

사태의 추이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문제를 계기로 입주자대표회의를 해산하자는 등 봄의 아파트 단지가 소란스러울 것이다. 어쨌거나 이 참에 나도 소위 업무집행방해라는 걸 좀 해볼 생각이다. 일이 재밌어졌다. 자작나무는 죄가 없다.

961

나의 어제는 내일과 똑 같으리라. 업데이트는 없다. 죽음만이 날 업데이트할 것이다. 그건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이므로.

959

목련이 피고 있다.
저 꽃은 실탄이다.
피하라.
무조건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