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6월 집앞, nikon n50 tamron 28-200mm 3.8-5.6 fuji superia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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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급조한 광복동이 출생기
8월 15일 새벽 4시, 아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눈이 떠진다. 내가 눈을 뜨자마자 ‘아 오늘은 광복절, 태극기 달아야지’라고 생각했을 거 같은가?
따위: (졸린 눈을 비비면서)왜? 아퍼?
아내 : 응
따위: 많이?
아내 : 아니, 아직은 견딜 만해
따위 : 그럼 계속 견뎌라(또 잔다)
아직 견딜만한 아내는 씻는다. 나는 새벽잠을 깬 거이 억울하기도 하고 거사를 치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약간 심드렁하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뒤척거린다. 아내가 다 씻었다. 내 차례다. 샤워기를 틀어 물을 뒤집어 쓴다. 정신이 맑아온다. 맑은 정신? 맑은 정신이라. 내가 정신이 맑은 적이 있었던가?
출동준비가 끝나니 어영부영 새벽 5시 30분, 아직 작전을 개시하기에는 이른 시간인 것이다. 좀 더 자자. 진통은 30분 간격으로 오고 있다. 좀 더 자도 된다. 또 잔다. 자는 게 남는 거다.
모비딕’에 보니까 ‘Think not, is my eleventh commandment. Sleep while you can, is my twelfth’라고 있더라. 모세의 십계명에 이어서 ‘아무 생각 없이 잠만 디비 자는 게 열한번째, 열두번째 계명이란다’. 내 생활신조와 딱 어울린다. 그러므로 모비딕은 좋은 책이다.
아내가 다시 깨운다. 7시다. 10분 간격 진통이란다. 가끔은 나도 대신 아파 주고 싶을 때도 있기는 있다. 이제 그만하면 움직일 때가 되었다. 짐을 챙긴다.
기엽이가 깨서 나와서는 ‘The very hungry caterpillar’ 틀어 달란다. 뭐가 될라고 저러는지… 누나에게 애 봐달라고 전화를 건다. 온 댄다. 오더니 매형이 새벽 4시에 들어와서 부부싸움 한 게임하고 잠들자 마자 다시 깨서 온 거라고 투덜거린다. 다 동생 잘 둔 덕이다.
아내가 출발하기 전에 나우 자전거를 고쳐놓으란다, 나가 보니 안장 너트 하나가 도망가고 없다. 멍키스패너하나 챙겨 나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로 반사판 너트 빼서 안장 볼트에 끼운다. 짝 잃은 반사판 볼트가 불쌍하다. 빼서 버린다. 반사판은 찍찍이로 고정시킨다. 임시방편이다. 임시가 상시가 될 꺼다. 다시 올라오니 이번에는 나우도 깨어있다.
따위 : 나우야 엄마 아빠 병원가서 ‘기떡이’ 낳아가지고 올께.
나우 : 응. 헤헤
예상 밖으로 순순히 떨어진다. 이상하다. 광복절이라 그런가
강변북로는 한산하다. 차에다 태극기 달고 달리는 애국자도 있다. 부끄럽다. 나도 애국을 해야 하는 건데. 이게 다 ‘기떡이’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애 낳으러 가는 건데 비상등이라도 깜빡이며 폼나게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비상등 안켜고 후줄근하게 달려서 병원에 도착한다.
병원에 도착하면서부터 보호자는 심심하다. 그냥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다가 이거 해라 하면 이거 하고 저거 해라 하면 저거 하면 된다. 그래서 기다린다. 심심하다. 아내는 지금쯤 불안, 초초, 긴장 일 텐데 나는 한가하다. 철없는 남편 만나서 고생이 많다.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웬 아저씨가 ‘셋째 낳으러 오신 분이죠?’ 한다. 아저씨가 아니고 의사다. 따위가 셋째 나러 왔다고 벌써 병원에 소문이 쫘악 돌았나 보다.
간호사가 오더니 수술동의서 작성하란다.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한다. 어쩌라구? 이제와서 동의서 읽어보고 문구 따지다가 그러면 딴 병원으로 가라고 하면. 안그런가?
조금 있다가 간호사가 또 쪼르르 와서는 무슨 마취를 할꺼냐구 묻는다. 수술 끝나고 덜 아픈 거는 15만원 더 내야 한단다. 그럼 그걸로 하지뭐. 돈 내고 오란다. 에이 그냥 평범한 걸 루 할걸!
돈 내러 가니까 원무 담당 직원이 열라 바쁘다. 외환딜러처럼 전화기를 2개들고 통화를 하지 않나. 키보드들 열라 두들겨 대질 않나, 전화교환원 노릇을 하질 않나. 다재다능하다. 스카우트해야겠다. 암튼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돈 내는데 그래서 20분 걸렸다. 아무려나 돈 내고 있는데 수술실에서 빨리 오란다. 나도 가고 싶다고, 근디 저 다재다능한 쟤가 열라 바쁜척 돈을 안받아서 그런거 아냐, 투덜이 따위 투덜거리며, 가니까 나한테 수술용 초록색 까운 입히고, 모자 씌우고, 마스크 씌우고 따라 오란다. 쫄래쫄래 따라간다. 가다가 손 씻으란다. 빠악빠악 씻는다. 손 씻으니까 들어 오란다. 쭈볏쭈볏 들어간다. 들어가니까 수술은 이미 진행중이다.
수술대 위에 큰 대자로 묶인(정말이다 내 아내가 묶여 있다. 어쭈구리 이놈들 봐라 싶다. 니들이 뭔데 내 아내를 묶어? 꼬와도 꾹 참는다.) 아내 머리 맡에 쪼그리고 앉으란다.
마취과 의사는 “쓰레빠” 신은 발 까불까불 거리면서 계기판를 보고 있다. 저 기계의 이름이 무슨 스코프더라. 아내의 혈압과 맥박이 그래프와 함께 그려진다. 얼핏보니 뭐 정상이다.
그 와중에 지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썩션” 또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야 나온다” 하더니 “으앙”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험한 세상에 뭐 볼게 있다고 날 오라고 했느냐는 반항의 울음 소리같다.
애가 나오니까 “아빠 이리오세요. 손가락 발가락 다 다섯개씩이죠. 척추 똑바르죠. 보세요. 항문도 있죠, 몸무게는 3.3Kg이구요. 보시다 시피 아들이구요. 그렇게 가만히 서 계시지 말고. 뭐라고 말씀을 좀 하셔야죠, 아이가 아빠 목소리 듣게. 지금부터 탯줄 자를꺼예요. 요기 자르세요, 네 잘하셨어요, 아이와 산모 손목에 채울 name tag에여, 확인해 보세요, 지금부터 병실에 올라갈 거구요. 산모는 회복실에서 한 3시간 있을 거구여”. 아 거 되게 말 많드만.
병실로 올라가면서 간호사가 아빠가 안고 올라가는 거란다. 이 병원은 좀 유난스럽다. 안는다. 가볍다. 세월이 가면 무거워 질 것이다.
‘산다는 건 갈수록 무거워 지는 거야 임마. 니가 지금은 뭘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면 알게 될거야. 니 위로 깡패같은 누나에다가 말썽 피우는 형이 있다구, 어때 상황파악이 좀 되냐? 아무튼 지구에 온 걸 환영한다’
아이 신생아실에 ‘입방식’치루고, 전화질 시작이다.
“네 장모님 전데요….”
“어머니세요…”
“어 누나 난데…”
으 또 고생 시작이다.
(나중에 생각나면 계속…)
2002년 8월 20일 (언이 태어나고 5일 후)
p.s.
뒤지는 김에 더 뒤져보자, 했더니 이런 것도 있네요. 보아하니 예전에 어떤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렸던 거군요. 원래 제가 재탕 삼탕은 잘 안하는 스따일 이기는 하지만 뭐 애 셋 블로그에 막둥이 출생기 있는 게 구색도 갖추고 좋을 듯하여 올립니다. 이상타. 이 밤에 뭔 말이 그렇게 많지. 비 맞은 중모양.
응가하는 물고기
<니모를 찾아서> 보셨습니까? 전 아이들 때문에 거짓말 좀 보태서 한 백 번은 본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이렇지요. (이하 스포일러입니다.)
‘니모’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스쿠바 다이빙을 즐기는 치과의사에게 잡혀갑니다. 눈 앞에서 아들이 잡혀가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아빠는 망연자실해졌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찾아나섭니다. 그 길?에서 아빠 물고기는 심한 건망증 증세가 있는 ‘도리’라는 이름의 파란 ‘아줌마 물고기’를 만나게 되고 둘은 이후 함께 행동을 합니다. 일종의 ‘물고기 버디’ 무비인 셈이죠.
그런데 ‘도리’는 언어적 재능이 뛰어난 물고기입니다. 알파벳을 읽을 줄 알고, ‘고래말’을 할 줄도 압니다. 당연히 이 재능은 아빠 물고기가 ‘니모’를 찾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한편, 시드니의 한 치과병원의 수족관에 잡혀온 니모는 ‘바다 출신’이라는 것으로 일단 좀 먹고 들어갑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출신지가 고작 다른 수족관이거나 쇼핑몰이거나 인터넷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역시 ‘바다 출신’의 대장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 갈 데 없는 물고기 클럽’을 조직하고 서로 위하며 살아갑니다.
‘니모’는 곧 ‘달라’라는 이름의 치과의사의 조카에게 선물로 주어질 운명입니다. 문제는 이 조카가 수족관 물고기들에게는 악명높은 아이라는 겁니다. ‘흔들어서 물고기를 죽인 아이’라는 것이죠. 이 아이는 치과치료 중으로 ‘보철’을 한 모습이 물고기들 눈에는 정말 극악무도하게 보입니다. 아무튼 니모에게는, 그리고 수족관의 물고기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그리고 이 치과병원에는 펠리칸이 드나듭니다. 그는 치과의사의 치료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나름대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펠리칸입니다. 그도 영화의 나레이티브 전개상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줄거리 얘기는 이쯤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니모를 찾아서’를 자꾸 보다보면 대사들이 감칠맛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죠.
__지금부터 최대한 더럽게 행동해. 생각도 더럽게 하고.
__이름만 광대지. 끼가 없어.
__입만 살았지. 움직이지들을 않어.
__이 얄미운 정수기야.
__아무 일 없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__왜 안무섭겠어. 상언데…
__광대물고긴데 진짜 안 웃겨.
아이들은 이제 영화의 대사를 전부 외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언’이가 자꾸만 틀어달라고 해서 나머지 식구들도 어쩔 수 없이 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p.s.
편집자 모드에서 Entry를 뒤져보니 ‘응가하는 물고기’가 2004년 2월 29일 날 draft로 되어있군요. draft 상태이니 쓰다 만 것일테고 그때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저 따위로 제목을 붙였을텐데 잘 기억이 안나는군요. 나중에 생각나면 생각나겠지요.
쭈쭈바 먹다가 날아가는 참새를 보는 언이와 언이의 턱밑에 묻은 쭈쭈바를 닦아주는 할머니
─ 2004년 6월 23일 서대문자연사박물관, nikon N50 tamron 28-200mm 3.8~5.6f fuji superia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