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머리 자르다.
Monthly Archives: December 2003
뭉크의 절규에 못미치는 절규
그의 집에서 그의 카메라에 포착된 나
성수동 밤거리를
성수동 밤거리를 헤매다. 이제 아무도 코가 삐둘어질 정도로 마시지 않다. 눈이 오면 아무데서나 눈을 덮고 자던 친구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그는 다만 귀가 길이 걱정이다. 나는 곧 그를 잊는다. 나는 나를 만나 어색해 하는 한 사람 앞에서 어색해하지 않아하다. 가로수마다 알전구들을 뒤집어 쓰고 갈 데 없는 나무 모양으로 빛나는 포스코 센터 4거리에서 나는, 아아, 나는 나다. 제길. 나는 나다. 제길.
머리가 너무
머리가 너무 길다고 느끼다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느끼다 머리가 거추장스럽다고 느끼다 머리가 지저분하다고 느끼다 머리를 박박 밀고 싶다고 느끼다
아무리 느껴도 머리를 자르면 추울 거라는 걸 안다 그게 싫다
책을 뒤적이다가 본 재미있는 구절 하나: 자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어떤 사람을 두고,
가령, 어떤 사람을 두고, 왜 그러고 사는 지 도저히 이해가 안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할 때의 ‘이해한다’의 의미는 ‘그러고 사는 삶’에 대한, 혹시는 ‘그러고 사는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화자의 태도가 부정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지지할 수 없다거나 안타깝다거나 심하게는 경멸한다거나 하는 태도 말이다. 화자의 이 태도가 타당한 지 아닌 지는 ‘그러고’가 어떤 것인지를 알기 전에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이러고’ 사는 것도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