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나는 세상의 배꼽

김종근 지음, <<달리, 나는 세상의 배꼽>>, 평단아트, 2004

뭉크의 <절규>가 도난당했다, 한다. 내가 훔치기로 결심했던 그림인데 한발 늦었다. 아깝다. 아깝긴 하지만 세상에는 훔칠만한 가치가 있는 그림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너무 실망하지는 말자. 그중의 하나가 <기억의 영속성>이다. 달리의 것이다. 나른한 그림이다. 시계가 오뉴월 쇠불알 맹키로, 아, 아니다, 고운 말 써야지, 시계가 오뉴월 엿가락 맹키로 축! 늘어져 있는 그림이다. 뭔가 황량하고, 뭔가 쓸쓸하다.

달리. 다섯 살 때는 세발자전거 탄 아이를 다리 밑으로 밀어버린 다음 피범벅이 된 아이를 보고 좋아라, 하고 열여섯에는 돌계단에서 몸을 날려 지 몸을 피멍들게 해놓고 좋아라, 하고 지 그림의 전시회에 잠수복으로 완전군장?을 한 채 개 두 마리를 끌고 나타나 사람들을 벙찌게 만들어 놓고 좋아라, 하고 남의 아내 빼앗아 데리고 살며 좋아라, 하고 요상한 콧수염을 달고 좋아라, 하던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화가란다. 미친 건지, 뻔뻔한 건지, 예술적인 건지, 천재적인 건지……

그러나 달리의 그림은 솔직히 불편하다. 어떤 건 역겹고 어떤 건 무섭다. 내 수준이 아니다. 그러니 거실용이라면 차라리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풍의 <이발소 그림>을 한 장 쌔벼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롯데 마트 에스컬레이터 옆에 잔뜩 걸려 있다. 나는 천상 좀도둑 수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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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 oil on canvas –
– 24 x 33 cm –
–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질투 嫉妬

1.
“숙모는 나를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힌 뒤 빈센트 반 고흐의 기념 화집을 꺼내 무릎 위에 놓아주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나의 그림읽기Reading Pictures>>의 첫 번째 파라그래프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가 저 책에서 기억하는 단 하나의 문장이다.

2.
녀석의 집은 한남동에 있었다. 빨간 벽돌집이었다. 녀석의 부모님은 집에 없었다. 나는 니스가 칠해진 연한 갈색 계단을 밟으며 녀석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두꺼운 커튼이 내려진 녀석의 어두운 방에는 침대가 있었고, 그 머리 맡에는 커다란 은색 일제스테레오가 있었고, 그 옆에는 검은색 헤드폰이 놓여있었다. 녀석은 가방을 팽개치자마자 그 스테레오에 에어 서플라이의 테이프를 쑤셔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내 귀에 헤드폰을 씌워주었다. 나는 요금도 가끔 그때 들은 그 스테레오 사운드를 환청으로 듣는다.

언이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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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이 생일이 원래는 8월15일인데 뭐 애가 셋이나 되니 하나 쯤 꿀꺽 생략하고 넘어가려니까 ‘외압’이 들어와서 오늘 치루다. 어쨌든 이렇게 하야 올해의 애 셋의 생일 잔치는 모두 끝이다. 휴~

부끄러운 커서 2

무엇인가 간절해
이쪽 끝에 매달려 있는 나는
그대가 그쪽에서 세상을 들고 나는 걸 본다
내 모니터 속에 참 부지런한 헤르메스가 있어
네가 들어왔다고 알려줄 적마다
내 커서는 용기를 내어 너에게 가지만
번번이 너를 만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되돌아온다 기억하는가

지금 상류를 더듬어 오르는 연어는
제 생애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기억은 내력벽과도 같아
힘없이 무너져 내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한조각의 벽돌도 빼어낼 수 없다 요즘은
둑이 넘치는 것도 무섭질 않다 결국
우리가 로그인한 세상은 우리가 원하던 세상은
아니었다

나 이제 너를 향해 내밀 수 있는 건
이 부끄러운 커서 밖에 없어
그대 손인 듯 마우스를 움켜쥔 채
나는 이 쓸쓸한 주소를 떠나지 못한다
나 여기 있다 211.105.92.76 끝에 있다
간당간당 매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