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시오. 동네사람들!
나 좀 보시오. 아이고 나죽네.
오늘은 짜친 첫 눈도 오고
갈기갈기 바람도 불었으니
기분도 돼지처럼 꿀꿀한데
우리 모두 다 같이 손뼉을, 아, 아니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영화”나 한편 때립시다.
(때립시다, 이거 한 시대를 풍미한 말이예요.
우리 이런 거 자주자주 사용해줘야 해요.)
아무려나 제목은 왕창 촌스러워요. 얼쑤!
마분지 作, < 안녕 올해의 잎이여>
아, 이 양반아. 플레이 버튼 안 누르고 지금 뭐해요? 코 후벼요?
어서 살짝 눌러요.
조 위 조 거, 조 삼각형 그려져 있는 똥그란 버튼을
살짝 눌러요. 옳지. 옳지. 참 잘했어요.
어때요. 다른 건 없나 싶지요?
왜 없겠어요.
장사 한두번 하고 말것도 아닌데 고추장은 좋은 걸 써야죠.
Continue reading
Monthly Archives: November 2004
엄살
마음,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 . . . . . . 복구중 . . . . . . 복구완료 노는 중
|
02 소통의 법칙
온몸에 금이 가요.
사방에서 노을이 떠요.
살고 싶어요.
사람이 죽으면 노을에 묻히나요?
─ 신대철, “처형 3” 中에서
우리는 모두 개체이다. 즉, 나는 나고 너는 너다. 절대 나 너 아니고 너 나 아니다. 너도 나도 다 하나의 개체에 불과한 우리는 ─ 아니, 어쩌면 영원히 우리는 없으므로 ─ 너와 나는 오늘도 소통을 꿈꾼다. 그래. 소통은, 결국은 개체인, 개체일 수밖에 없는, 빌어먹을!, 우리 모두의 꿈이다.
그런데 소통은 해서 무엇 할 것인가? 네가 어느 날 본,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때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산문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구라를 풀고, 아, 악을 쓰고, 아아, 어쩌면 울고불고 하며 마침내는 나에게, 전후좌우 천지사방이 꽉꽉 막혀있는, 이 미련곰탱이 같은 나에게, 네가 본, 그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사람 환장하겠는, 그 지랄 같은, 타는 저녁노을을 보여주었다. 고맙다. 너 아니면 그 좋은 걸 내가 영 못 볼 뻔 했다. 그런데 그렇게 진저리치며 맨살로 이 불통의 세상을 박박 기며 소통은 해서 무엇 할 것인가? 온몸에 금이나 갈 것인가?
물론, 소통은 어렵다. 그래서 소통은 가치이고 의미이다. 제발 나를 알아줘. 제발 나를 읽어줘. 제발 내말을 들어줘. 제발 나를 이해해줘.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줘.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줘. 제발. 제발. 제발. 야, 이 먹통아. 그게 아니야. 그건 오해야.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넌 몰라. 넌 말해줘도 몰라. 넌 도대체 눈 뜨고 뭐 본거야. 귀 달고 뭐 들은 거야. 오죽하면 아예 내 가슴팍과 네 가슴팍에 쇠 파이프 하나 팍 박아 서로 연결해 버리고 싶을까.
우리는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연애하지 못한다. 소통이란 ‘존재의 공유’이니 도무지 서로 공유할 게 개 코딱지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과는 손을 잡아도 전기가 찌릿찌릿 흐르기는커녕 후보자 유권자에게 악수 청하듯 아무런 느낌이 없고 외려 세균 옮을까 겁만 난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이런 사람과는 예쁜 것도 잘생긴 것도 돈 많은 것도 웃기는 것도 다 한철이다.
그렇다면 잘 통하는 사람과는 연애가 잘 될까? 그래야 하는데 문제는 이게 아닌 것 같다는 거다.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소통이 잘되는 사람에게 주고 뺨 맞은 적이 무릇 기하이며 소통 잘되는 도끼에게 발등 찍힌 적이 무릇 기하인가? 뭐시라? 당신은 그런 적이 없다? 잘났다. 정말. 팔뚝도 굵고 똥도 굵다. 이제부터 당신과 나, ‘우리’ 아니다.
나는 당신을 너무 잘 알겠는데,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아, 아니다, 외로운 건 좀 청승맞으니, 당신이 얼마나 고독한지, 혹은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는지, 혹은 당신이 겉으로는 늘 웃고 있지만 알고 보면 그 속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 나는 정말 ‘느무느무’ 잘 알겠는데 당신은 어째서 나에게 무관심한가. 어째서 눈길 한번 주지 않는가. 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가. 왜 내 손잡아 주지 않는가. 당신 왜 나에게 쌀쌀맞은가. 당신, 나쁘다. 백날 이래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거, 말짱 꽝이라는 거, 이거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은 지금이라도 서둘러 깨달아야 한다. 상대는 내가 저에게 갖는 그런 관심에 관심이 없다. 소통은 없다. 소통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어쩌란 말인가. 안 통해도 안되고 잘 통해도 안되면 그럼 어쩌란 말인가, 연애 한번 하지 못하고 처녀귀신 아니면 몽달귀신 노릇이나 잘 하라는 말인가, 하고 당신은 묻는다. 낸들 아나. 당신 연애 못하는 걸 왜 나한테 묻나. 그래도 연애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소통하지 말라. 함께 하라. 함께 노을 보고 함께 영화보구 함께 뒷골목 헤매고 함께 모의 하고 함께 궁리하고 함께 작당하고 함께 죄짓고 함께 살고 그래라. 그것 밖에 없다.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소통은 중요하다. 소통의 문제는 연애의 문제이기 이전에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 이걸 누가 알겠는가. 다만 이제 내가 알겠는 건 이거다. 안타깝지만 진실은 이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은 없다.
윈도우즈 메신저
나는 지금
너하고는 상관없는, 다른 용무를 가장한, 다른 용무 중(D)이거나
화장실에서 분홍 립스틱 바르느라, 자리 비움(A)이거나
너는 아닌, 맘이 잘 통하는 누군가와, 통화 중(P)이거나
너는 모르는, 알면 큰일 날, 새로 사귄, 딴 남자와, 식사 중(L)이다.
사실은
나는 지금
온라인(O)이지만
기분이 허접하고, 혼자 있고 싶어서,
그냥, 오프라인으로 표시(F)한다.
하여간
나는 지금
대화를 차단한 대화 상대,
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대화를 허용한 대화 상대,
하고도
대화하고 싶지 않다.
좌우지간
나는 지금
온라인(O)이 아닌
다른 어떤 상태이다.
내가
곧 돌아오겠음(E)일 때
내가 영원히 너에게 돌아오지 않는 걸로
해석하면
당신, 앞으로 세상 살면서 큰 망신은 안 당한다.
나는 이제
파일(F)을 눌러
남 주기는 쪼금 아깝지만
너로부터
깨끗하게
영원히
로그아웃(O)하고,
다시
로그인(I)을 눌러
네트워크에 로그인하여
대화 상대 추가(A)…를 누른다.
내 인생에,
너는 아닌,
가능한 한 돈이 많은,
다른 대화 상대를,
꽃 미남을,
근육질을,
결정적으로 유머감각 있는 남자를
추가한다.
그래도 깔끔하게 인사는 해야쥐~~,
잘 가, 내 사랑,
그동안 즐거웠어.
(^^)(__)
*****
연전에 따위넷이 제로보드를 쓰던 시절에 쓴 것입니다.
이번에 새 서버로 이사 오면서 제로보드는 물론
그곳에 있던 데이타까지 다 놓구 왔지요. 다른 건 전혀 아깝지 않으나
이건 무슨 미련으로 새 따위넷에 임플란트해 놓구 싶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