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OS REBEL 35-80mm, ILFORD HP5 400
Monthly Archives: February 2005
문자를 받다
2/16 9:08 A
잘지내고잇겟지
여긴 눈이오네
저벅저벅
저벅저벅
감옥의 낭하에 울리는 발자국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쓸쓸했을까? 아팠을까?
감옥에 다녀온 적이 없으니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저벅저벅
아파트 계단을 올라와
딸아이에게 가족 이외의 그 누구 앞에서도
절대로 죽어도 발음하면 안된다고 말한
몇 자리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연다. 환한 거실이다. 아빠! 하고 부르며
달려올 아이들이 다 잠든 조용한 거실이다.
나는 살그머니 안방문을 연다. 그리고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아내와 아이 셋이 아무렇게나 잠들어 있다.
17인치 컴퓨터 LCD 모니터가 아직 환하다.
아내가 나를 위해 끄지 않고 남겨둔 것이다.
나는 씻지도 아니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단골로 드나드는 몇 개의 사이트를 둘러본다.
돌아 앉은 이는 여전히 돌아 앉아 있고
쉬는 이는 여전히 쉬고 있다.
바다를 보고 온 이는 바다를 올려 놓았고,
오랜 만에 시를 읽은 이는 시를 올려 놓았다.
그 모든 빈 집에 다 들러 나는 댓글도 없이 안녕을 한다.
안녕, 안녕, 안녕.
너도 나도 저지르지 못하고 보낸 하루여!
그래도 오늘은 좋은 일이 있었다.
지구 저쪽 누구는 메신저로 r u there?
하며 안부를 물었고,
천상병은 아니지만 사람을 만나 가난한 술을 마셨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차례대로 안녕을 하고
천천히 하루를 닫는다.
물론 당신에게도 안부를 전한다.
하루의 컴퓨터를 끄는 것은 나의 일이다.
sk telecom을 쓴다는 것
흥. 별거 아닌 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지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사, 1983(25쇄)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책을 꺼내 들었다. 거의 20년 만이다. 누렇게 빛이 바랜 종이 위에 다닥다닥 숨죽여 있던 텍스트들을, 세 아이들이 온 집안을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야단법석 속에서, 저녁내 읽었다.
그러자 무엇보다도 내 누이가 아직 꽃답던 여고생일 때 사들였던 삼중당문고가 떠올랐다. 아마도 이 책이 세로쓰기로 편집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첫 문장이다. (여담이지만 앞으로 되도록이면 내가 읽는 소설의 첫 문장 만은 애써 기억하려 한다.) 조세희의 문장은 대표적인 ‘스타카토’ 문체다.
그의 이 냉정한 문체는 난장이들의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이 철거되는 장면묘사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들이 우리의 시멘트담을 쳐부수었다.(…)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어머니는 돌아앉아 무너지는 소리만 들었다.(…)아주 쉽게 끝났다. 그들은 쇠망치를 놓고 땀을 씻었다.”
충돌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난장이에게 “『일만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빌려주었던 ‘지섭’이라는 청년이 나선 것이다. 그러다가 저 청년은 철거반원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보다 못한 난장이의 두 아들이 나서려 하는데 난장이가 두 아들의 팔을 잡아 끌어 제지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는 사람이 말하게 해라.”
“아는 사람”이라는 말, 무서운 말이다. 그가 저 아는 바를 “말하”는 것을 우리는 ‘실천’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