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다 저녁 무렵 그는 집을 나선다. 그는 약속이 있다. 이곳으로 이사온지 4년만에 그는 아주 낯선 사람들과, 그러니까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술을 마신다. 이곳은 아직 나무 한 그루 보도 블럭 하나도 다 낯설다. 그나마 신도시라 지상에 전봇대는 없다. 전봇대가 있었다면 그 중의 한 전봇대와 그는 틀림없이 깊게 사귀었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미숙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려고 노력한다. 대화가 오고 갈수록 어쨌든 사람들과 만나고 살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 아프다. 그는 어떤 사람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 노골적으로 그는 절실하다. 가까스로, 자아를 추스리며 집에 돌아온다, 그는. 오는 길 때 맞춰 비가 내린다. 그러나 비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힘들게 양치를 하며 그는 어떤 시구를 생각한다. 정확치는 않으나, 사람을 만나고 온 파도 거품 버릴 데를 찾아…였던 것 같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조차 제대로 인용하지 못한다. 이 시구를 말하는 사람을 그는 단 한 차례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니가 만나고 온 게 사람이 아니라 고작 거품이었니, 라고 그는 자문한다. 그는 오늘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사람들은 낯설다. 그에게 낯설지 않았던 자들은 모두 자신의 거품을 버리러 그곳으로 떠났다. (계속)

요즘 들어 그는 부쩍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는 7권의 책을 於中間하게 읽고 있다 그는 처음으로 클래식 음반을 하나 샀다 그는 최근에 알게 된 어떤 사람에게 술 한 잔 하자고 말해 놓은 상태다 딸이 성이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넣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치과의사가 어금니를 뽑을 때 그는 입 속에서 시작된 균열이 자신의 전 생애로 번져나가리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 들어 그는 부쩍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신문사 지국의 전화는 계속 불통이다 그는 신문사절이라고 써붙여 놓고 아침마다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 만화를 본다 그는 해야하는 어떤 전화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는 대학 때 독일어 대리 시험을 봐달라던 친구의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한 걸 오늘에야 후회했고 참회했다 (계속)

경기보통도

아빠, 나 서울특별시에서 만든 타임 캡슐 봤다.
응? 뭐라구?
나 서울특별시에서 만든 타임 캡슐을 봤다구.
응, 그래, 그렇구나. 어디서?
책에서.
책?
응, 그게, 사실은 책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만드는 활동지.
응, 그랬구나.

그랬는데, 경기도에 사는 나우가 꼬박꼬박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하니까 갑자기
아, 그래, 맞다, 내가 경기보통도에 살고 있었지, 하는 자각이 확 밀려오더란 말씀.

0901

“서울대.포항공대.카이스트 등 우수한 전산 인력들이 성인오락실 게임 프로그램 제작에 동원되었다. 여느 IT 벤처 기업보다 성인오락실 기업 쪽이 대우가 좋았다.” ─ 시사저널 200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