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저녁 무렵 그는 집을 나선다. 그는 약속이 있다. 이곳으로 이사온지 4년만에 그는 아주 낯선 사람들과, 그러니까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술을 마신다. 이곳은 아직 나무 한 그루 보도 블럭 하나도 다 낯설다. 그나마 신도시라 지상에 전봇대는 없다. 전봇대가 있었다면 그 중의 한 전봇대와 그는 틀림없이 깊게 사귀었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그는 정치적으로 미숙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려고 노력한다. 대화가 오고 갈수록 어쨌든 사람들과 만나고 살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 아프다. 그는 어떤 사람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 노골적으로 그는 절실하다. 가까스로, 자아를 추스리며 집에 돌아온다, 그는. 오는 길 때 맞춰 비가 내린다. 그러나 비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힘들게 양치를 하며 그는 어떤 시구를 생각한다. 정확치는 않으나, 사람을 만나고 온 파도 거품 버릴 데를 찾아…였던 것 같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조차 제대로 인용하지 못한다. 이 시구를 말하는 사람을 그는 단 한 차례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니가 만나고 온 게 사람이 아니라 고작 거품이었니, 라고 그는 자문한다. 그는 오늘 낯선 사람들을 만났다. 낯선 사람들은 낯설다. 그에게 낯설지 않았던 자들은 모두 자신의 거품을 버리러 그곳으로 떠났다. (계속) |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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