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스텔라

내가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캠퍼스 스텔라’라는 말을 보았는데, 그것이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이었다. 스텔라가 별인 건 이미 알고 있었고 캠퍼스라는 말에 들판이라는 뜻이 있는지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동명의 소설이 캠퍼스 스텔라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다. 저런 지명을 가진 곳이 실제로 있을까?

저 소설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두 번째 계기는 우리동네에 있는 벌판 때문이다. 지난 겨우 내 나는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한 벌판 옆을 차로 지나다녔는데 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캠퍼스 스텔라를 떠올렸던 것이다. <별들의 들판이라. 포에틱하군. 별들의 들판에도 새벽마다 서리가 내리고 안개도 자욱할까. 공지영은 뭐라고 썼을까.> 그러면서도 차일피일 미루어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어제 교보문고에 갔다가 마침 저 책이 눈에 들어오길래 쭈그리고 앉아 읽었다. 책 한 권을 다 읽은 건 아니고 저 제목의 소설만 읽었다. 연작소설집이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소설 얘기를 하자면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나 생략하기로 하고 여기에는 별들의 들판이 스페인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었다는 것만 적어 둔다. 책에는 “싼띠아고 데 꼼뽀스뗄라”라고 적혀 있었다.

바람의 전남편

봄날, 삶의 기억이 아무렇게나 으깨지고 있다
이 폐허가 된 기억을 쌓으려고 나는 살았는가
내게도 바람과 통정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 시절은 오랜 지병과도 같다
나는 바람의 전남편이다
불어라 나는 이제 늙어 기억의 야적장이 되었다
불어라 바람이여 나의 창녀 나의 전처여
나는 바람도 의미도 품을 수 없는 거미줄이었다
오늘은 날이 좋으니 기억이나 빨아 널어야겠다

봄나무

지난 해 언젠가 인부들이 아파트 단지의 나무들을 마구 자르고 있는 게 보였다.
알아보니 새로 부임해 온 관리소장이 조경차원에서 자르라고 지시를 했다 한다.
마음에는 무지 안 들었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 갔다.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저 나무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었다.
나무들이 마구 연초록을 밀어올리는 봄인데 아파트 곳곳에 저런 불구의 나무들이 서 있다.

부활절 아침

아이들 등쌀에 단발 고무줄총을 급조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이들 다 데리고 13:30까지 성당으로 오라는 아내의 명령이다.
물론 나는 삐딱하다.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아내가 재빠르게 대답한다.
“계란 준대.”
“오, 계란을 공짜로 줘? 그럼, 가야지. 알았어.”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당했다는 느낌도 들고
내가 사실은 퍽 단순한 인간이라는 자각도 든다.

계란 얻어 먹으러 가려면 앞으로도 70분이나 남았다.
이 사실을 공표하면 저것들이 좋다고 시끄럽게 떠들어댈터이니
출발 직전까지 비밀에 부쳐야겠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이렇게 써야겠다.
오늘 밤에도 낮에 먹은 계란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