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서

가령, 공고 같은 데를 나와
아니, 어쩌면 언감생심 고등학교는 근처도 못가보고
그러니까, 내 나이 열일곱 살 쯤에
청계천이나 을지로 어디 쯤에 있는 철공소나 전파사나 공구상 같은 데 취직해서
밥 벌어 먹으면서
지나가는 교복 입은 또래들을 보면 부러워하다가
특히나 여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리다가 저리다가 쓰라리다가
나이 차서 군대 가고
제대 하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그곳에 깃들어
이 나이 먹도록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이나 하는 것이다, 나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쇠조각에 구멍 네 개 뚫는 공임이 5000원이면 조금 비싸다 생각하면서.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을지로에서.

확 끊어 버려야지

“나우 아빠, 복도에 나가서 담배 핀 적 있어?”
늘 웃음 띤 얼굴을 하고 있는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조심스레 묻는다.
“아뇨. 베란다에서 피우는데…”
“그렇군. 위층에서 담배 냄새 난다고 뭐라 그래. 밖에 나와서 피워.”
“그래요? 알았어요. 안 피울게요. 안 그래도 끊으려는 참입니다. 가족들도 난리고.”
“그래. 끊어. 돈 버리고 몸 버리고…”
“네.”

연양갱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름달 복 많이 받으시오. 그리고 연양갱 싫어하는 사람들은 냉큼 저리 가시오.

나는 연양갱을 좋아 한다. 초코렛과 연양갱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주저없이 연양갱을 선택한다. 연양갱 따위는 거들떠도 보지도 않는 저 입맛 고고하신 분들의 치하가 돼버린 삭막한 이 세상에서 어쩌다 연양갱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고향 까마귀는 저리가라다.

요즘 아이들은 대체로 연양갱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집 아이들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하여 우리집에 생기는 양갱은 언제나 내 독차지였는데 이제는 방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강력한 경쟁자가 생긴 까닭이다. 연양갱 마저 꼭꼭 숨겨 놓아야 하는 세상이라니! 확실히 살기 힘들어 지고 있다. 이 경쟁자가 오늘 아침 크라운 웰빙 연양갱을 까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 밤 연양갱이나 웰빙 연양갱이나 그냥 연양갱이나 맛은 다 똑같애.”

나는 앞에 뭐가 붙지 않은, 그러니까 그야말로 순수, 참, 오리지널, 오쏘독스, 재래식 연양갱 만을 좋아하며 앞에 뭐가 붙은 퓨전스타일에는 쉽게 손이 나가지 아니 하는데 이 경쟁자는 뒤에 연양갱만 붙으면 앞에 뭐가 붙든 상관없는 모양이다. 조심해야 겠다. 저게 내 연양갱 다 먹을라.

변화 1


2008. 2. 6. 사진인데 이제 따위네 조직원들은 이렇게 자지 않는다.
딸아이는 혼자서, 아들 녀석들은 둘이서, 나는 아내와 잔다.
다 이유가 있다.

오늘의 문장

“자신만의 ‘목소리'(짖는 소리라도 괜찮아, 스누피야!)를 찾아라.”

─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