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에서

가령, 공고 같은 데를 나와
아니, 어쩌면 언감생심 고등학교는 근처도 못가보고
그러니까, 내 나이 열일곱 살 쯤에
청계천이나 을지로 어디 쯤에 있는 철공소나 전파사나 공구상 같은 데 취직해서
밥 벌어 먹으면서
지나가는 교복 입은 또래들을 보면 부러워하다가
특히나 여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설레리다가 저리다가 쓰라리다가
나이 차서 군대 가고
제대 하고 딱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그곳에 깃들어
이 나이 먹도록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 없는 생각이나 하는 것이다, 나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쇠조각에 구멍 네 개 뚫는 공임이 5000원이면 조금 비싸다 생각하면서.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을지로에서.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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