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반상회 다녀온 아내에게 오늘 아침 전해들은 이야기.

태권도장에 다녀오는 우리집 머스마들이 엘리베이터의 108층의 버튼을 누르자 107층 사는 아랫집 여자는 생각한다. 이것들이구나. 이 잡것들이 허구헌 날 쿵쾅거리며 뛰는 놈들이구나. 이 놈들아, 내 아들이 고3이다. 잘 걸렸다. 한 마디 해줘야겠다.

여자: 너희들 집 안에서 맨 날 뛰지?

언: 아니요, 기쁜 일이 있을 때만 뛰어요.

여자: 그럼 너희는 맨 날 기쁘냐?

언: 네.

내년에는 우리집 애들이 더 많이 쿵쾅거리게 하옵시고, 다만 층간 소음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해주시길 바라나이다. 지금까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나이다. 아멘

“늘 곁에 두고 먼지가 쌓일 틈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읽어라!”

며칠 전 인터넷 서점에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오늘이 예정된 배송일이었는데 1월 2일에나 책이 도착하겠다고 오전에 문자가 왔다. 아이가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유감이군.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연말이라서 바쁜 모양이니 급할 것도 없는데 참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렇게 마음을 먹고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방학 하고 온 아이, 오자마자 책을 찾는다. 사정을 말해주니 실망을 해도 이만저만 하는 게 아니다. 남친한테 차여도 그 표정보단 낫겠다. 음, 혹시 모르니 전화나 걸어볼거나. 전화를 걸어 체감 시간 3분 동안 시키는 대로 이 번호 저 번호 눌렀댔더니, 허무하게도 한두 시간 이내에 피드백 전화를 준다는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고 전화가 툭 끊긴다. 기계한테 진상 부릴 수도 없고 난감하다.

전화 오기로 한 시간은 애저녁에 다 지나갔다. 그렇지 뭐, 잊어야지 뭐, 하고 있는네 “고객님의 상품은 09:00~12:00에 배송될 예정입니다”라는 문자가 온다. 날짜가 없으니 언제 온다는 건지 알 수가 없는데다가 오전인지 오밤중인지 시간이 또 애매하다. 책 따위가 무슨 고도도 아닌데 오기는 오는 건가.

베란다에서 컴퓨터용 ‘DB-77 강력먼지제거제’로 흡입력이 약해진 진공청소기 필터를 청소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포스트맨이 누르는 것도 아닐진대 벨이 두 번 울린다. 누구지? 아이가 나간다. 아빠, 책이야. 책이 왔어. 아이가 급방긋하며 뛰어 들어온다. 뜯어 보렴.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선물 대용으로 사준 몇 권의 책이 도착하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다저녁에 보통 때는 통 아니 울리는 집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 인터넷 서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기로 달려가는 아이를 제지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받는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강가딘입니다.” 헐, 일찍도 전화하시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55분이다. 순간, 여차 저차 해서 이렇고 저렇고 하니 이리 저리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려다가

날도 날인데다 텔레마케터가 무슨 죄랴 싶어서 “결론만 말씀드리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하고 말았다. “예, 그러세요? 안녕히 계세요” 한다.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목은 함께 배달돼온 내 (몫의) 책에 인쇄돼 있는 문장이다.

형제

아빠, 가자.

소피 마르소와 뽀뽀하기 직전이었는데, 북극에 갖다 놔도 될 만큼 단디 챙겨입은 아이들이 내 단 낮잠을 깨운다. 망할 놈들.

가? 가긴 어딜 가?

어디긴 어디야, 보충 놀이 가야지.

보충 놀이? 그게 뭔데?

어허, 이거 왜 이러셔. 어제 밤에 놀이터 나가 놀아 준다 해 놓고 안 놀아 줬잖아. 놀이터 가는 거 빼먹었으니까 보충 놀이 가야지.

나는 엣지가 없어요

엣지 세워봐야 소용없어요. 낸들 아나요. 대충 내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겠다는 뜻일걸요. 중요한 건 중요하지 않아요. 국가백년지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지 않으시겠어요. 어쩌면 환유가 답일지도 몰라요. 말 한 마디에 한 인간의 전모가 드러나기도 하는 거거든요. 오 유어 갓, 잇 댐 갓! 태평성대 엔조이 잘 하시고요, 그럼 좋은 굴삭기 되세요. 나는 엣지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