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5일 오후 2시
6.15 선언 10주년 기념으로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자
한국은행 금융박물관에서 막 걸어 나오던
중년의 외국인 남녀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해 하며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국민학교 시절
민방공 싸이렌이 울리면
작아서 잘 들어가지도 않던
정부미 비닐봉지를 복면강도처럼 얼굴에 뒤집어 쓰고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숨막혀
답답해
하던 기억을 가진 중년의 사내가
그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이미지가 점령한 거리
야, 우리가 아르헨을 어떻게 이기냐?
형, 내기 할래요? 만원 내기?
오토바이 배달 서비스맨 두 명이 시답잖은 내기를 벌이며 지나간다
어려운 일 생기면 연락하라던
고교 동창이 하는 병원이 아마 저기 어디 쯤일 것이다
날은 더운데 버스는 안오고
날이 더우면 그리운 사람도 그립지 않다
Monthly Archives: June 2010
태극전사
생각 없이 ‘태극전사’라는 말을 쓰지 말 것. 월드컵은 전쟁이 아니며, 선수들은 군인이 아니다. 전쟁의 은유는 전쟁을 내면화한다.
오랜만에 산 시집의 뒷표지에서 “비문인 문장들”을 언급하는 문장이 비문임을 발견하고 킬킬 거리다.
“그의 시는 ‘문체’의 힘으로 작품들을 흐르게 한다. 낯선 조어나 한자어들, 이따금 따져 보면 비문인 문장들까지 그의 시는 음악의 소용돌이 속으로 부드럽게 때로 거칠게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