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 책들, 2010

작가님, 글쓰기를 마치고 외출을 하신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는 도중에 작가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후닥닥 서재로 올라가서는 거기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천상 작가다.

작가님, 목하 외출중이시다. “그는 눈은 카메라, 귀는 녹음기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병이다. 직업병.

작가님, 몸은 타자기 앞을 떠나셨으나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생각이 많고, 질문이 많다. 그리하여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를 격리시키고 옆으로 밀어 놓으면서 사회인으로서 나의 패배를 시인했다. 나는 평생 동안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제시켰다. 그들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내가 환영받고 포옹받으며, 여기 사람들 사이에 끝까지 앉아 있을지라도 나는 결코 그들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래야 작가님이시지.

작가님, 외출에서 돌아오셨다. 피곤하시다. 피곤하면 누워 양이나 세시지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또 생각의 탑을 쌓으신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누가 내게 말하는가?” 맨날 묻기만 하면 뭐하나? 써야지. 써야 작가지.

작가님, 하물며 또 다짐도 하신다. “일에 실패하지 말자고. 다시는 언어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얇은데 지겹게 읽었다.

고민

우: 아빠, 나 따위넷 좀 봐도 돼?
따위: ?
우: !
따위: 봐라. 음, 그게 따위넷은 원칙적으로 만인에게 공개 돼 있는 거고 너도 만인 가운데 1인이니 봐도 된다.

2003년 12월에 따위넷을 열었는데 이런 날이 왔다. 내 자식이 따위넷을 읽는다? 이건 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오스람

“1919년 독일의 대표적인 전구 제조사인 AEG, 지멘스, 아우어 사가 전구 생산을 위한 공동 기업 ‘오스람’을 발족했다. ‘오스람’이라는 이름은 필라멘트에 사용된 금속 오스뮴과 텅스텐의 뜻을 담고 있다. 이 두 금속은 융해점이 극히 높다. 그래서 필라멘트가 더 뜨거워지고, 그래서 더 환하게 빛나는 것이다.”

<<클라시커 50 발명>>, p.143

*** one more ***

“이것[합성수지]은 경멸조로 불릴 때는 ‘플라스틱’, 좋은 의미로는 ‘인조 섬유’, 가치 평가가 담기지 않고 전문가들에게 명명될 때는 ‘폴리머(중합체)’라고 불린다. 이 세 가지는 다 동일한 것을 뜻하며, 이것은 우리의 문명을 지탱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ibid, p.202

*** and one more ***

“시멘트란 본질적으로 구워진 석회석이기 때문이다.” ibid, p.146

구멍난 팬티가 있는 풍경

언: 마더,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마더: 김치볶음밥!
엽, 언: (동시에) 우와.

사이. 언이는 샤워했고, 엽이는 뭐했는지 모르겠고, 나는 중요한 거 했다. 마더는 밥했다. 우는 어디 가고 없다.

우: (돌아와 현관문 열고 들어오면) 왔어요.
언: 왔어?
우: …
언: 아, 그리고 누나, 하나 알려 줄게.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볶음바압.
우: 야, 그런데 어제 (엽이를 보며)니가 입고 있던 팬티를 오늘 왜 (언이를 보며)니가 입고 있어?
언: 몰라아.
우: 어쨌든 그거 구멍 났으니까 버려.
엽: 그렇다고 버릴 필요 까지야아.

이글루

목요일. 지겹지도 않은가, 악동들의 로망, 악동들의 교과서, <나홀로 집에 3>를 또, 또, 또, 또 빌려다 본 애셋, 영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이번에는 그림 그리기에 나섰다. 영화에서처럼 각종 장치가 곳곳에 잡복해 있는 집을 그린다. 문을 딱 열면 뭔가 튀어나와 악당을 골탕먹인다거나 하는 그런 신나는 장치 말이다. “야, 좀 자세하게 그려.” “됐다.” 온갖 추임새를 넣어가며 애셋,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금요일.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던 모양이다. 누나, 우리 밖에 나가서 놀자. 밖에 나가서 이글루 짓자. 그래, 그러자. 그거 좋겠다. 아침나절에 우르르 몰려나간 아이들, 다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씩 막내가 춥다고 드나들며 바깥 소식을 전한다. 아빠, 이따만하게 이글루를 지었어.

토요일. 짓던 건 마저 지어야지. 애셋, 또 나간다. 아주 바람직하다. 아침에 나가서 해질녘까지 밖에서 놀다가 오는 아이들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단 말가. 아이 엠 존나리 프라우드 오브 유! 막내가 춥다고 들어왔길래 군만두 궈 먹이고 바깥 소식이 궁금해 슬슬 나가 사진을 몇 장 찍고 들어왔다. 야, 그게 이글루면 파리도 전투기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밥 먹으러 잠깐 들어왔던 아이들, 먹는둥 마는둥하고 또 기어나간다. 한데 귀신이 씌운 모양이다. 나가면서 아빠도 나와서 도와 달란다. 내가 미쳤냐? 적잖이 실망하더니 현관문을 닫으며 엄마, 나와서 보기라도 해, 라고 말한다. 짠하다. 하여 귀찮아 하시는 아내님 꼬득여 나간다. 나가 본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 엄동설한에 이글루 지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얼굴 빨개진 채로 이러고들 있는가, 싶다.

토요일 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들은 연신 베란다 밖 공원의 이글루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 내다보니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이글루를 둘러싸고 있다. “다행이다.” “부수는 것 같지는 않아.” “엄마, 엄마, 갔어.” 한 마디씩만 해도 세 마디가 된다.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기어코 어떤 아이들이 내 자식들이 이틀에 걸쳐 지어놓은 이글루를 부순 모양이다. “야, 그 무섭다는 중딩들인 모양이다.” 아내도 한 마디 한다. 나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 싶어 누운 아이들 곁으로 간다. (아, 요새는 또 비상시국이라 나는 혼자 자고 아내가 안방에서 자기 새끼들 다 데리고 잔다.) 아이들, 의외로 담담하다.

일요일 아침. 나는 지금 베란다 밖 공원의 망가진 이글루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아, 근데 그 형아들 왜 뿌셨지, 그걸.” “야, 너 그 소리 좀 그만해라. 어제부터 다섯 번째야.” 아이들은 여전히 이글루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