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 책들, 2010
작가님, 글쓰기를 마치고 외출을 하신다. “정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는 도중에 작가는 갑자기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후닥닥 서재로 올라가서는 거기서 어떤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천상 작가다.
작가님, 목하 외출중이시다. “그는 눈은 카메라, 귀는 녹음기라고 생각하며 걸었다.” 병이다. 직업병.
작가님, 몸은 타자기 앞을 떠나셨으나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생각이 많고, 질문이 많다. 그리하여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할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를 격리시키고 옆으로 밀어 놓으면서 사회인으로서 나의 패배를 시인했다. 나는 평생 동안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제시켰다. 그들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내가 환영받고 포옹받으며, 여기 사람들 사이에 끝까지 앉아 있을지라도 나는 결코 그들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그래야지. 그래야 작가님이시지.
작가님, 외출에서 돌아오셨다. 피곤하시다. 피곤하면 누워 양이나 세시지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또 생각의 탑을 쌓으신다.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 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누가 내게 말하는가?” 맨날 묻기만 하면 뭐하나? 써야지. 써야 작가지.
작가님, 하물며 또 다짐도 하신다. “일에 실패하지 말자고. 다시는 언어를 잃어버리지 말자고.”
얇은데 지겹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