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지겹지도 않은가, 악동들의 로망, 악동들의 교과서, <나홀로 집에 3>를 또, 또, 또, 또 빌려다 본 애셋, 영화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이번에는 그림 그리기에 나섰다. 영화에서처럼 각종 장치가 곳곳에 잡복해 있는 집을 그린다. 문을 딱 열면 뭔가 튀어나와 악당을 골탕먹인다거나 하는 그런 신나는 장치 말이다. “야, 좀 자세하게 그려.” “됐다.” 온갖 추임새를 넣어가며 애셋,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금요일.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던 모양이다. 누나, 우리 밖에 나가서 놀자. 밖에 나가서 이글루 짓자. 그래, 그러자. 그거 좋겠다. 아침나절에 우르르 몰려나간 아이들, 다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씩 막내가 춥다고 드나들며 바깥 소식을 전한다. 아빠, 이따만하게 이글루를 지었어.
토요일. 짓던 건 마저 지어야지. 애셋, 또 나간다. 아주 바람직하다. 아침에 나가서 해질녘까지 밖에서 놀다가 오는 아이들이 요즘 세상에 어디 있단 말가. 아이 엠 존나리 프라우드 오브 유! 막내가 춥다고 들어왔길래 군만두 궈 먹이고 바깥 소식이 궁금해 슬슬 나가 사진을 몇 장 찍고 들어왔다. 야, 그게 이글루면 파리도 전투기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밥 먹으러 잠깐 들어왔던 아이들, 먹는둥 마는둥하고 또 기어나간다. 한데 귀신이 씌운 모양이다. 나가면서 아빠도 나와서 도와 달란다. 내가 미쳤냐? 적잖이 실망하더니 현관문을 닫으며 엄마, 나와서 보기라도 해, 라고 말한다. 짠하다. 하여 귀찮아 하시는 아내님 꼬득여 나간다. 나가 본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 엄동설한에 이글루 지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얼굴 빨개진 채로 이러고들 있는가, 싶다.
토요일 밤. 집에 돌아와서도 아이들은 연신 베란다 밖 공원의 이글루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 내다보니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이글루를 둘러싸고 있다. “다행이다.” “부수는 것 같지는 않아.” “엄마, 엄마, 갔어.” 한 마디씩만 해도 세 마디가 된다. 한 30분이나 지났을까, 기어코 어떤 아이들이 내 자식들이 이틀에 걸쳐 지어놓은 이글루를 부순 모양이다. “야, 그 무섭다는 중딩들인 모양이다.” 아내도 한 마디 한다. 나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까 싶어 누운 아이들 곁으로 간다. (아, 요새는 또 비상시국이라 나는 혼자 자고 아내가 안방에서 자기 새끼들 다 데리고 잔다.) 아이들, 의외로 담담하다.
일요일 아침. 나는 지금 베란다 밖 공원의 망가진 이글루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아, 근데 그 형아들 왜 뿌셨지, 그걸.” “야, 너 그 소리 좀 그만해라. 어제부터 다섯 번째야.” 아이들은 여전히 이글루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