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다정한 가족

일요일에 친구 따라 청담동 간다는 딸이 아내에게 용돈을 달라하자 아내가 아빠한테 가서 받으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며칠 전 아내에게 고작 5만원을 빌렸는데 엊그제 딸 버스비로 1만원을 대신 주었으므로 현재 남은 빚은 무려 4만원인 것이다. 온다, 저기, 딸이. 빚 받으러 온다.

아빠, 만원 줘.

내가 순순히 내줄 리가 없다.

없다. 아빠 팔아 가져.

딸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가서 이른다.

아빠 팔아서 가지래. 어디다 팔아야 좋을까?

이때다. 틀림없이 안방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을 막내가 대꾸하는 소리가 들린다.

글쎄? 장기매매?

“사랑하기 좋은 날”

뭐라구요? 사막이 아름다운 게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렇다면 어딘가에 부자도 있으니까 가난도 아름다운 거겠군요.

다정한 가족

아침에 아내가 나한테 감히 우씨, 그랬다.
—우씨? 니가 폭력 남편을 경험을 안 해봐서 그러지?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이렇게 대꾸했다.
—너야말로 폭력 아내를 못겪어봤구나.
그러자 지나가던 딸이 이렇게 말했다.
—폭력 딸도 있어. 가출할 거야.

제목은 나중에

큰 생색을 내고 스킨십을 잔뜩 선불로 받은 연후에 아내가 들려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평천하하러 길을 나서는데 내 옆으로 제네시스가 지나가고, 내 옆으로 벤츠가 지나가고, 내 옆으로 SM5가 지나간다. 다들 하루치 길을 떠나는 것이다.

단언컨대—요즘 세상과 거의 완벽하게 절연하고 사는 지라 이 말이 왜 유행인지는 모른다—나는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부러워 한 적이 없지만 아 누구는 음식물 쓰레기 들고 나가는데 아 누구는 벤츠 타고 나가니까 이건 좀 그렇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으며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음식 냄새, 냄새, 냄새와 SM5.

내 오래 된 섬섬옥수에 남은 음식물 쓰레기의 핫한 냄새를 몸서리치도록 느끼며 단지 정문을 지나는데 며칠 전 새로온 경비 아저씨가 거수 경례를 한다. 거리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단 소속의 할머니 사람들이 한 손에는 비닐봉투를, 다른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F—살인마

거실 천장 전등에 메뚜기 외사촌처럼 생긴 초록 벌레가 날아들었다.

막내에게 살충제를 뿌리라 말했더니 F–살인마 말씀이시군요, 하더니 어디선가 F–킬러 처조카 뻘 되는 걸 가져온다.

나는 묻는다. 너 “F–설인마”라는 말 어디서 들었어? 니가 생각해 낸 거야? 녀석이 대답한다. 형아한테서.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형아’를 바라본다.

느닷없는 F–살인마의 살충 안개를 피해 이리저리 날던 초록 벌레는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이 바닥에 툭, 떨어져 경련을 일으킨다. 한 생명이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