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섞으면 웃긴다

가령, <산토끼>의 멜로디에 <송아지>의 노래가사를 붙여서 불러보라. 웃긴다. 나는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하는 <대전부르스>의 멜로디에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마징가Z의 가사를 붙여서 노래를 부르던 친구를 알고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에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 거기가 어디오? 하이마트’하던 CF도 같은 맥락이다. 성악가가 무대의상으로 차려입고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코믹히다. 전설의 가사 바꿔 부르기 게임은 다 이 맥락이다.

노래만 섞으면 이야기가 서운해 하니까 이야기도 섞어보자. 태풍 매미가 오는 날 노무현 대통령이 관람을 했다는 바로 그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

심 봉사를 모시고 사는 외동딸 춘향은 고을 원님의 아들 몽룡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원님은 신분의 차이를 들어 두 사람의 교제를 허락하지 않고, 몽룡을 한양으로 보내는데…. 사랑을 얻지 못한 춘향은 결국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우리에게 친숙한 ‘심청전’과 ‘춘향전’을 섞어놓은 듯한 이 이야기는 요즘 서울 성북동 삼청각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의 내용. 각기 다른 작품들의 줄거리를 합쳐놓은 이 작품은 형식에 있어서도 국악과 양악이 어우러진 이른바 ‘퓨전 뮤지컬’이다. (동아일보 2003년 9월 23일)

이런 것도 있다.

서방님! 이제 제 날개옷을 돌려주세요.
아니 되오. 아직 석봉이 하나 밖에 못 낳지 않았소. 어서 둘을 더 낳아주시오.
그저 딱 한번 만져보기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조건이 있소. 불을 끄고 떡을 써시오. 떡을 예쁘게 썰면 한번 보여주겠소.
이리하여 석봉어머니는 떡을 썰었고, 예쁘고 또 예쁘게 썰어서 날개옷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냥 쳐다만 보려던 게 살짝 만져볼까
하니(1), 만져보게 되고 만져보니 한번 걸쳐볼까
하니, 걸쳐보게 되고 걸쳐보니 한번 날아볼까
하니, 날아오르려고 하는 이 중차대한 순간에…….
그 중차대한 순간에
석봉이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어머니! 그건 무슨 옷이옵니까?
어, 이거, 이거 날, 날, 개, 날개옷이란다.
날개옷이라면 그 유명한 잠자리날개옷말씀이십니까?
??!!

이게 마음에 안 들면 다른 걸 보여드리지.

아버님! 소자 괴로워서 못살겠나이다.
아니, 석봉아 별안간에 느닷없이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封窓 노크하는 소리냐? 왜 호박씨가 맛이 없느냐?
아니, 그런 것이 아니오라 요즘 심청이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사옵니다.
이런 못난 놈. 이를 어쩐다. 옳다구나. 내가 심청이 아버지한테 정부미政府米 300가마를 꿔준 게 있는데 그걸 얼른 상환하라고 청탁을 넣어주겠다. 석봉아, 너는 정말 애비 잘 만난 줄 알아라.
아버님, 그럴 땐 청탁이 아니라 압력이라는 용어를 쓰셔야 합니다.

이것도 마음에 안 들면(까다롭기도 하셔라) 이런 건 어떨까?

아니면 시조 두개를 섞어 봐도 재미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러면 여러분의 주 안에서 평강들 하십시오. 옴마니팟메훔. (2)

갓 쓰고 자전거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 웃긴다. ‘전통’과 ‘외래’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장을 한 걸 보면 웃긴다. ‘남성’과 ‘여성’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기저귀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웃긴다. ‘어른’과 ‘아이’가 섞여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유에 밥을 말아 먹는다든가 케첩에 밥을 비며 먹는다든가 하는 식습관에 선뜻 동조하기 어려운 것도 우리의 관념 안에 서로 별개로 분리되어있는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하나로 결합되었을 때, 그것이 낯설기 때문이다.

(1)김소월의 <가는 길>이라는 시의 1연은 이렇다. 그립다/말을할까/하니 그리워
(2)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하권, 문학과 지성사,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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