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여자에게)애인 없어요?
여자: 네.
김제동: 왜 없어요?
여자: 모르겠어요…
김제동: 왜 몰라요? 난 딱 보니까 알겠는데…
(동아일보, 2003년 8월 13일)
웃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상대방을 공격하라. 공격하면 웃긴다. 성격/똥배/지능/성적/목소리/걸음걸이/학교/직장/무다리/대머리/음치/독신/결혼/애 셋 등등 공격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동해물과 백두산처럼 마르고 닳지 않는다.
자,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상대방의 모든 것을 공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공격은 다 인신공격이다. 다시 한번 인/신/공/격! 엇, 뜨거라. 말만 들어도 이거 어쩐지 조심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공격! 이거 잘못하면 연인들은 찢어지고, 국론은 분열되고, 토론은 개판이 되고, 한여름에 폭설이 내리고, 세상의 모든 게들이 똑바로 걷기 시작한다. 이거 잘못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책상은 기린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 밖에는 안 된다. 그런 말은 책상의 존재에도, 기린의 존재에도 영향을 못 미치는데 달리 말하자면 둘 중의 어느 쪽을 정의하는 데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리얼러티는 내적 부정에 의해 지배받는다. 내가 기술자나 중국인이 아니고 60살도 아니라고 하는 사실은 곧 나의 존재 자체를 깊이 건드리는 발언이 된다. 언어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각각의 마음은 그 체계의 다른 요소들에 대한 내적 부정의 관계에 있다.(강조: 나)
내가 기술자나 중국인이 아니고 60살이 아니라는 발언도 존재 자체를 깊이 건드리는 발언이 되는 마당에, 하물며 못생긴 여자한테 못생겼다고 말하는 건, 머리 나쁜 사람한테 머리 나쁘다고 하는 건, 거의 화약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자살폭탄테러 행위에 가깝다. 이런 발언들은 존재를 건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들 쑤셔 놓는다.
아시다시피 들 쑤셔진 존재들은 ‘앙심’을 품는다. 한번 웃자고 원한을 사서야 어디 되겠는가? 일이 이러하니 공격을 할 때는 상대방을 봐가면서 공격해야 한다. 아울러 같은 상대라도 때와 장소와 기분과 처지와 감정을 가려가면서 공격해야 한다.
다시 김제동의 기사(같은 날, 같은 신문)를 보자.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남을 웃기는 방법은 두 가지, 자기를 낮추거나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외모로 웃음 만들기=속사포 같은 김제동의 말은 재미를 주면서도 때로는 공격적으로 비친다. 김제동도 출연자와 말을 주고받는 것을 ‘공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외모 등 민감한 소재를 다룰 때도 항상 호의적인 분위기로 끝맺어야 하는 게 건강한 웃음의 비결이다.
“‘얼굴이 왜 이렇게 생겼어요?’ 하면 누가 기분 나쁘지 않겠어요? 대신 ‘자세히 보니까 저하고 좀 닮으신 것 같네요’ 하면 상대도 ‘재미있게’ 화를 냅니다. ‘아니 제가 뭐가요?’ 하면서. 그럼 분위기 좋잖아요.”
▽외모 수준에 따른 대응=아주 잘 생긴 사람이 나오면 동료 MC나 출연자까지 동원해 그 사람을 ‘공격’한다. 관객들도 잘 생긴 출연자가 ‘당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
“하지만 끝의 반전이 중요해요. ‘여자들이 많이 따르죠? 우린 그게 소원이야, 이 사람아’ 하면서.” 얼굴이 정말 못생겼을 경우에는 외모로 놀려서는 안 되며 아예 무대로 부르지 않는 게 좋다. 또 여성의 경우 외모가 괜찮을 경우에만 하는 것이 안전하다.
거, 공격하는 거 생각보다 복잡 미묘하군. 허면 다른 사람보다 공격하기 쉬운 보다 안전한 대상이 있다. 그건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공격하라. 이말이 중요하다. 웃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스로를 공격하라. 웃기는 사람은 잘난 체 하지 않는다. 웃기는 사람은 자신을 낮춘다. 웃기는 사람은 스스로를 공격한다. 웃기는 사람은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러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쪽팔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용기. 미인을 얻기 위해서만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때로는 타인을 웃기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자해하는 용기.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용기. <오즈의 마법사>의 사자에게는 없었던 어떤 것!
바로 이 ‘공격형 유머’ 케이스를 보고…갑자기 떠오른 에피소드…
그러니까 예전 다니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인데…그 회사 모 팀장은…성별은 분명 ‘여자’인데…하는 짓이나 말하는 거나 외모나 영락 없는 ‘남자’였다…그녀에게 ‘남자 같다’란 말을 하는 건…유머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주변에 다 그리 인지하고 본인도 당연시하니까…유머가 될 수 없다…그런데…어느날이었다…그 팀의 팀원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우리 팀장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내 머릿 속에는…’남자’ ‘여장부’ 등등…상투적인 별명들이 떠올랐다…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그래서 뭐 더 엽기적인 것인가보다 하고 “뭔데?”하고 되물었다…그러자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그 팀원이 던진 대답…”여자” 그순간, 느껴졌던 어떤 전율…아 여자!!!! ‘남자 같은 여자’에게 ‘남자’라고 부르는 건 절대 안 웃긴데…’여자’라고 부르니 정말 열라 웃겼다…난 한동안 저 별명 얘기 하나로 사람들을 웃기고 다녔다…”야, 그 팀장 별명이 뭔줄 알아? 여자래…” 으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