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애들 밥도 안 주고 뭐 했어? 간밤에 늦도록 방자전과 동태전을 부치시느라 꼭두새벽에 잠자리에 드셨다가 오전 11시 50분 쯤에 일찌감치 일어나신 아내님께서 나를 보자마자 일갈! 하신다. 오매, 무섭다. 그러고 보니 가스불에 얹어 놓은 밥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남들은 저런 냄새를 탄내라고 부른다고 한다. 늘 그렇지만 남들은 이상하다. 생각하는 것만 아니라 냄새 맡는 것도 이상하다. 아무려나 요즘 들어 부쩍 ‘늙어서 보자’는 덕담을 입에 달고 사시는 아내님이 뭐라 그러시니 느릿느릿 몸을 움직여 밥상을 차릴 수밖에! 하여 우선 식탁을 훔치려고 행주를 빠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돌아보니 맙소사, 따님께옵서 어느 결에 내 뒤에 와서 슬쩍 키를 재보고 있다. 며칠 지나면 나를 추월할 기세다. 그렇게, 추석빔 하나 못 얻어 입은 추석 전날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듯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