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

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묻는다.
“당신은 어려서 여드름 많이 안 났어?”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 얼굴에 여드름이 돋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보니 영 심란했던 모양이다.
“안났지 그럼. 내 피부는 말야, 여드름 하나 없이 백옥 같았다구.”
그러자 가족들이 일제히 설마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한 녀석 쯤은 속으로, 또 뻥 치시고 계시네, 라고 추임새를 넣었을 지도 모르겠다.
“피부가 저렇게 인텔렉츄얼 한데… 여드름이 안 났을 리가 없는데…”
아내가 불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피부가 인텔렉츄얼 하다는 건 내 피부가 지성이라는 뜻이다. 이런 걸 ‘이루족족’ 말로 다 설명해야 한다. 인간은 인간대로 피곤하고, 언어는 언어대로 참 피곤하시겠다.
“사춘기 때 내 피부가 얼마나 고왔냐 하면 말이야. 지나가는 여학생이 한번 만져보자고 덤벼들 정도…”
이런 식으로 ‘야부리’가 파도가 되고, 파도가 해일이 되고, 해일이 썬더스톰이 되고, 썬더스톰이 빅뱅이 되려고 하는데 어디서 블랙홀 같은 막내 녀석이 튀어 나와 초를 친다.
“근데 지금은 왜 그래?”
이런 걸 보고 전문용어로 다 된 밥에 재뿌린다고 하는 거다. 키드득. 가족들, 속이 다 후련하다는 표정이다.
아내가 촌철살인이네, 한다.
“엄마, 촌철살인이 뭐야?”
“니들은 좋겠다. 아빠 닮았으면 여드름 안 나겠다.”
“엄마, 촌철살인이 뭐냐니까?”
이하 중구난방이다.
“살인이 그 살인인가?”
“아니 작은 쇳조각으로 사람을 왜 죽여?”
그러게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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