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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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가 오는 밤

술 약한 선배는 저 홀로 괴로워 하고, 나는

어느 눈 먼 남자가 발 없는 발로 길 없는 길을 가다가

행여 이 술약한 선배를 업어 갈까(제발 그래라) 싶어 파수를 본다. 그러나

내가 파수를 보는 건, 설마 내가 선배를 남몰래 연모했다거나 존경했다거나

그런 까닭은 아니다. 나는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다. 제비를 잘못 뽑았기 때문.

아무려나

지금 저 아래 “갬블”이라는 이름의 바에서는

산해진미로 가득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옛 추억을 더듬는 얘기꽃이 한창이다. 그런데

내 신세는 이게 뭐람. 이 무슨 가혹한 장난의 운명이란 말이란

말인가. 내가 이 나이에. 게다가 애 셋 아빠가…

하여, 증거를 남겨 두고 두고 ‘보상’을 받으려고

셔터를 누른다.

p.s.
더 적나라한 사진 가득 있음. 필요하신 분 연락바람.

p.s. II
이걸 올려 놓고 얼마 있다가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무엇보다도 ‘제비뽑기’라는 말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몇 자 적는다.

제비뽑기는 술 취한 선배를 케어할 ‘당번’을 뽑기 위한 게 아니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의 성비가 우연히 1:1이 되자 장난 삼아 미팅 하듯
파트너를 정해보자는 게 그 순수한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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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놀란 건 제비 뽑기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게 전혀 기억에 없어서였다.
    필름이 끊긴 사실 조차도 몰랐다는 사실에 기겁을 한 거 였지. 그래서 어제 또 펐다.

  2. Title: 길 떠나는 어린 깡패

    등장인물: 어린 깡패, 술주정뱅이 할아버지, 그외 아직 미정

    시놉시스:
    옛날에 어느 별에,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들을 위해 정확히 밝히자면 소혹성 B612호에, 살던 어린 깡패가, 참나 지가 무슨 홍길동이라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해서 인생이 심심하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갔다.

    나가 보니 갈곳이 있나? 하여 대한민국하고도 수도 서울 하고도 강북하고도 명물거리인 홍대앞 주차장 골목에서 홈리스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활을 한 지 어언 몇 개월,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지친 어린깡패는 어느 술주정뱅이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총기가 있어뵈는 어린 깡패를 어여삐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따라가 보니 그곳이라고 뭐 희망이 있나? 할아버지는 맨날 술타령만 했다. 하여 어린깡패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왜 맨날 술만 마셔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음, 그게 말이야.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면 창피하단다. 아주 견딜 수가 없지. 그래서 술을 마시는 거야.” “아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술 마시는 게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술을 드시는 거예요?” “그렇지. 바로 그거다.”

    어린 깡패는 이 얘기를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길을 떠났다. 해서 도착한 곳은 지구하고도, 유럽하고도, 프랑스하고도, 파리하고도, 세느강변하고도, 뽕네프 다리밑이었다.

    먼 여행에 지쳐 잠들었다가 의식을 차린 어린 깡패는, 참나 지가 무슨 터미네이터라고, 전라의 몸으로 다리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3. 따위님은 니콘 FM2를 엿 바꿔먹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취해서 괴로운 사람을 담은 저 앵글,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따위님의 카메라는 알콜끼가 충분히 묻어있어야…
    빛을 발한다는 사실…본인도 피사체도 취해있어야 한다는 말씀…

  4. 칭찬인가. 오. 칭찬이구나. 방위 받을 때 마당 잘 쓸었다고 선임하사님께 칭찬들은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5. 필름이 끊기신 선배님의 모습
    나이브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게 필름이 끊기고 싶은데
    이런저런 일에 붙들려 잘 되질 않네요.

    일단 홈을 쉬려고 합니다.
    일단 문을 열어두긴 했습니다만…

    여러가지 마음 시끄러운 요즘인지라
    무언가를 말하고 만들어간다는 것도
    그리 쉽지가 않네요.

    암튼 잘 지내시구요
    가끔씩 놀러오겠습니다.

    저 선배님이 혹시 “지”를 빼먹고 “마분(말똥)”이라 부르신 분입니까?
    다음부터 따위넷에 올 땐
    말똥이라는 닉네임을 써야겠습니다.
    馬糞.

  6. 마분지님께서 닉을 ‘말똥’으로 바꾸시면.

    깡패, 말똥, 걸식, 따위…
    이거 따위넷을 점거한 닉들이 한결 같이 비주류, 마이너, B급 냄새를 풍기는군요. 우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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