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전야

자식 다 키웠다, 이제. DVD 빌리러 다녀오는 길에 누가바 사다가 상납도 할 줄 안다.
“뭐 빌려 왔느냐?”
“마이 웨이요.”
제목을 들으니 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나는 기다렸다가 졸라맨인지 볼라벤인지 태풍 구경이나 해야겠다.
“가서 니들끼리 보거라.”
“네.”
하드를 한 입 베어문다. 맛있다. 북경원인 뇌수 맛이다. 그때 다시 노크 소리가 난다. 누구냐, 내 방문 앞에 와서 선 너는? 딸이다.
“아빠, 저 누가바 한 입만 주세요.”
아깝지만 줬다. 딸은 내 누가바를 양심적으로 한 입 깨물고 돌려준다. 생각해보니 딸에게도 제 몫의 누가바가 있었을 거 같다.
“너 니 꺼 다 먹고 아빠 꺼 뺏어 먹는 거냐?”
“응.”
“왜?”
“나는 공평하니까. 내가 쟤들 것도 한 입 씩 뺏어 먹었거든.”

이렇게 대답하며 녀석은 쪼르르 가버렸다. 나는 헐,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Posted in 애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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