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어쩌자는 것인가 천둥번개 치며 비 오는 새벽 검은 지렁이 한 마리 젖은 아스팔트 위를 (           ) 기어가고 있다 거리의 흔한 청소년이라면 저 괄호 안에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존나 병신 같이, 라고 넣을 것이다 지렁이 자신은 어떤 부사를 써서 자신의 실존을 기술할 것인가 가령 묵묵히, 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소신 있게, 라고 할 것인가 비 내리는 새벽 세 시 담배 사러 가는 길에 만난 지렁이에게 나는 어떤 수식어를 헌정해야 하는가 내 머리에 최초로 떠오른 단어는 지렁이가 아니라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 말이 이 글의 주제인데 나는 정작 그 치명적인 언어는 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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