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상병이다

오늘 아침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투복을 착용한 늙은 군바리와 딱 맞닥뜨렸다. 순간, 내 속에서는 이 군바리는 또 어서 굴러 먹다온 개뼈다구냐는 식의, 그의 생물학적, 도덕적, 현실적 실존과는 무관한 제복에 대한 적개심이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모지?

그러다가 ‘용어’를 동원해서 말해서 계급사회의 계급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는데,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그의 어깨위의 계급장을 쳐다보았는데, 허걱, 찬란하게 빛나는 무궁화 세개! 그는 육군대령 이대령이었던 것이다. 다시 순간, 내 속에서 ‘충성!’하며 오른손이 반사적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쫄병의 어쩔 수 없는 움짐임이 포착되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 군용 가죽장갑과 갈색 SSAMZIE Tote Bag이 들려있었고, 상투적이지만 그의’워커’는 파리도 착지하지 못하고 미끄러질 듯 빛이났다. 엘리베이터가 10,9,8,7,6 고도를 낮추어 가는 동안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현역 육군대령 이대령과 예비역(이라는 말도 부담스러운) 공군상병 이상병 간의 도대체가 싸움이 안 되는 긴장감이 밀폐된 공간에 부풀어오르고 있다고 나만 느꼈다. 내 몸에도 어떤 ‘아우라’라는 게 있다면 그 군바리는 내가 저를 불편해 하고 있다는 낌새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군대령 이대령은 민간인인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 불편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 엘리베이터가 5,4,3,2,1 고도를 낮추어가는 동안 나는 요즘 육군 대령은 무슨 차를 타는가로 관심을 돌렸다. 그러나 애써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그에게 현관 앞에서 허걱, 육군병장 이병장이 거수경례를 올려붙이고 그래 오래기다렸지하는 그러니까 그 속뜻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의미를 가진 나름대로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차는 서울xx, 육xxxx 검정색 EF 소나타였다.

육군대령 이대령이 승차한 차가 아파트 단지를 휑하니 빠져나가는 걸 보며, 나는 잠시 일종의 착찹함에 시달렸다. 이것도 다 전두환 덕분이다.

p.s.
몇 년 전에 썼던 건데 우연히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Posted in 블루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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