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찍은 사진 한 장

글과 사진 윤광준, <<잘 찍은 사진 한 장: 윤광준의 사진 이야기>>, 웅진닷컴, 2002

잘 찍은 사진 한 장이 뭐가 어떻다구? 사람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기라도 한다구? 아님 어느 날 지구를 역회전시키기라도 한다구? 성격상 시비 먼저 걸었다. 시비 아직 안 끝났다. 포에틱하게 제목 짓느라 누군지 고생깨나 했겠다. 이 책의 컨셉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건 오히려 부제다. 윤광준의 사진이야기. 윤광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진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한 책이다.

그런데 윤광준은 누구인가? 책날개의 저자 소개는 이렇게 시작된다. “오디로 평론가로 잘 알려진 윤광준의 본업은 사진작가이다.” 이런, 이런, 낭패다. 오디오 평론가로 잘 알려졌다는 데 나는 금시초문이니, 이 사람이 덜 알려졌거나 내가 시대에 뒤쳐진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다. 오디오 분야는 내가 낙후된 분야이니 후자가 맞겠다. 됐다. 이쯤하자. 괜히 제목 가지고 시비를 거는 이유는 다른 부분은 시비 걸 게 별로 없어서다.

성실하게 썼다. 그만큼 이것저것 내용이 알차다. 책 중간 중간에 실린 사진도 좋다. 하긴 좋아야지 名色이 사진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로 사진가인데 그게 안 좋으면 쓰겠냐?

다른 얘기는 관두고 여기서는 필카냐 디카냐 맞짱을 함 떠보자. “필름은 사진의 오리진”이라는 챕터의 한 구절을 보자. 그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해서 “커다란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효율성과 편리를 선택한 대가치고는 그 후유증이 너무 컸다. 인쇄물의 결과는 고객의 불만으로 이어졌고,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작업 의뢰 중단이란 현실적 손해로 다가왔다. 굵직한 고객 몇몇은 벌써 다른 사진가를 물색하고 있었다.” 프로 사진가에게 이것만큼 치명적인 읽은 없다. 한마디로 디지털 카메라 한번 섣불리 썼다가 앗, 뜨거라 싶게 당한 거다. 필카의 한판승! 일동 박수! 짝! 짝! 짝!

물론, 이 책이 나온게 2002년이고 그러니 그가 사용했었다는 디지털 카메라의 성능이 요즘 것 보다는 한참이나 성능이 뒤졌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는 “향상된 성능의 디지털 카메라는 커다란 힘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내심 눈치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에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나의 태도는 단호하다.”고.

그런데 최근에 보니 이 분이 <<윤광준의 아름다운 디카세상 : 디카로 잘 찍은 사진 한 장>>라는 책을 새로 냈다. line extension이다. 전편의 메인타이틀 이었던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라는 제목이 이번에는 부제로 갔다. 앞에다 혹을 하나 달고. 하여 ‘디카로 잘 찍은 한 장’이다.

그가 ‘디카의 유혹’에 넘어갔다기보다는 ‘브랜드 확장의 유혹’에 넘어갔다, 고 얘기하면 지나친 혹평일까? 모르겠다. 서점에 가서 그의 새 책을 슬렁슬렁 넘겨보면서 중간중간에 게재된 사진을 보았다. 실망스러웠다. 디카로 찍은 것이리라. 속편은 사지 않을 것이다. 해서 나는, 아직은 필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근데 솔직히 필름 현상하고 스캔받고 이러는 거 ‘느무느무’ 귀찮다. 그냥 퀄러티 조금 양보하고 편하게 찍고 싶기도 하다. 그러니 누가 속편에 돌을 던지랴.

Posted in 날림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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