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이 스머프

개구장이 스머프를 우연히 봤다. 가가멜이 그러는데 스머프의 키는 사과 세 개 높이라고 하더라, 스머프의 약점은 착한 마음씨이고. 기억해 두려고 여기 적어 둔다. 한 번 더 적는다. 내가 적는다. 스머프 키는 사과 세 개 높이. 스머프 약점은 착한 마음씨. 운율을 넣으면 좋을 것 같으니 이렇게도 적어 본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스머프 키는 사과 세 개 높이. 아킬레우스 약점은 발목 스머프 약점은 착한 마음씨. 앞에 거는 괜찮은데 뒤에 거는 아닌 거 같다. 앞에 거는 썩 괜찮은데 뒤에 거는 영 아닌 거 같다. 영 거시기하다.

인상 깊은 장면은 이러하였다.

가가멜이 쫓아온다. 도망가야 한다. 급하다. 서둘러야 한다. 급하다. 똘똘한 똘똘이 스머프가 스머프 무리에게 말한다. “각자 방향으로 가.”

투덜이 스머프가 말한다. 상황이 급박하다고 투덜거리는 걸 멈추면 그건 투덜이 스머프가 아니다. 캐릭터는 어느 상황이든 살아야 한다. “난 방향 정하는 거 질색이야.”

똘똘이 스머프가 투덜이 스머프의 방향을 정해준다. 옥신각신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가가멜이 쫓아오기 때문이다. 똘똘이 스머프는 똘똘하기 때문에, 너는 시방 지금 이 타임이 투덜거릴 시간이냐, 투덜거리더라도 상황을 좀 봐가면서 투덜거려라, 하며 투덜이 스머프와 다투기 보다는 그저 냉큼 도망가는 게 종족 보존에 유리하다는 걸 안다. 투덜이 스머프는 원래 저런 놈이니까 그냥 무시하고 그냥 너그럽게 이해하고 그냥 얼른 후딱 정해주는 게 좋다는 걸 안다. 투덜이 스머프가 좀, 아니 많이 투덜거리기는 해도 애는 착하다는 걸 똘똘이 스머프는 똘똘해서 잘 안다. 애는 착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가령 친구를 잘못 만난다든가 해서 삐뚤어지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걸 똘똘이 스머프는 안다. 잘 안다. 똘똘이 스머프는 똘똘하다. 똘똘이 스머프는 똘똘한 캐릭터다. “그럼 저쪽으로 가.”

투덜이 스머프도 가가멜에게 잡아먹히기는 싫어서 똘똘이 스머프가 정해준 방향으로 달아난다. 방향 정하는 건 싫지만 가가멜에게 먹히는 건 더 싫다. 일단 뛴다. 냅다 뛴다. 존나 뛴다. 몸은 뛰지만 입은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고 투덜이 스머프에게는 입이 남아 있다. 투덜이 스머프는 남아 있는 입으로 투덜거린다. 투덜이 스머프는 남아 있는 입으로, 입만 살아서, 성격대로 투덜거린다. 투덜이 스머프의 캐릭터가 반짝 하고 빛난다. “난 저쪽으로 가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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